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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원전의 공사중단 여부를 다룰 공론화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위원회는 공사중단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공사중단 여부는 전화표본 조사 등을 통해 구성될 시민배심원단이 3개월간의 숙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게 된다. 위원회의 역할은 시민배심원단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공론화의 전 과정을 설계 및 관리하는 것이다. “공정성이 큰 숙제일 것 같다”는 김지형 위원장(전 대법관)의 취임 일성처럼 공론화위원회의 성패는 철저히 ‘공정성 관리’에 달려 있다. 따라서 객관적인 자료를 시민배심원단에 제공해야 하며, 토론과 숙의의 과정을 TV 생중계 등으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워낙 논쟁적인 사안을 다루는 만큼 추호도 오해받지 않도록 ‘절차적인 정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4일 열린 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김 위원장을 포함해 9명으로 이날 구성됐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공론조사를 앞두고 원전 중단처럼 전문가 토론이 필요한 ‘전문 분야’를 시민들에게 맡기는 게 옳은 것이냐는 우려 섞인 시각이 제기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주도’로 결정된 원전정책의 결과는 어떤가. 약 320만명이 거주하는 부산·울산 지역에서는 9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거나 시운전 또는 건설예정 중이다. 세계 최대의 원전밀집지대이다. 원전의 위험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고, 전력을 소비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주체인 시민은 ‘비전문가’로 치부됐다. 2011년 독일의 에너지윤리위원회가 탈원전을 결정한 핵심 이유는 한 가지, ‘삶의 가치’였다. 윤리위원회는 ‘인간과 원전의 공존은 가능한가’라는 화두로 고심한 끝에 ‘원전은 안전할 때 폐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전 문제는 기술·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점을 웅변해준다. 이번 공론화 결과 신고리 5·6호기의 공사가 완전 중단될 수도, 재개될 수도 있다. 공론화의 과정에서 다른 견해를 듣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받아 시민 스스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이야말로 참여민주주의의 소중한 경험이다. 결과가 어떻든 승복해야 한다. 정부도 행여 공정성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집단의 이기주의로 공론화 과정을 사사건건 무력화하려는 불순한 움직임도 경계해야 한다.

이번 공론화 작업은 앞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와 같은 국가적 갈등사안을 풀 수 있는 해법으로 유용할지 알아보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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