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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부영그룹 최고위층이 지난 2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장악한 K스포츠재단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록이 언론에 공개됐다. 재단 관계자가 “부영에서 체육인재 육성사업 5개 중 1개에 대한 시설 건립과 운영지원을 부탁한다. 70억~80억원 정도”라고 주문하자 이중근 부영 회장은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 다만 저희가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권력과 금력의 노골적이고 추악한 유착의 현장을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주는 광경이 또 있을까 싶다. 최씨 측의 안하무인식 지원 요청이나 그 대가로 세무조사를 없던 일로 해달라는 이 회장의 발상은 개발독재 시절을 연상케 한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4일 새벽 조사를 마치고 서초구 중앙지검 별관에서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최씨가 ‘조건이 있다면 놔두라’고 말해 거래는 없던 일이 됐지만 아직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부영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지만 회의록 작성자가 만남에 동참한 K스포츠재단 관계자임을 감안하면 부영의 해명을 믿기는 어렵다. 당시 부영은 세금탈루 혐의로 국세청 조사를 받고 있던 터였다. 국세청은 올 4월 부영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삼성도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 외에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지원을 위해 35억원을 송금한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그간의 얘기는 거짓이었다. 

기업들은 피해자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에 대가성이 없을 리 없다. 당시 SK, CJ, 롯데의 총수들은 검찰 수사를 받던 상황이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총수 신병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재벌들도 정부의 우대를 기대했을 것이다. 기업들은 박근혜 정권에 노동5법, 원샷법, 서비스산업특별법 같은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따지고 보면 회삿돈을 기업 최고위층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재단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

조만간 정경유착의 실상은 드러날 것이다. 재계가 감추고 부인한다고 은폐될 일이 아니다. 재계는 이제 권력에 의존해 이익을 챙기는 낡은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검은돈을 뿌려 부를 축적하겠다는 발상으로는 글로벌 기업이 될 수도 없다. 이 기회에 검은 거래를 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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