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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미스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 발언들도 그렇지만,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수많은 정책들이 과연 누구에 의해 어떤 이유에서 나온 것인지, 심각한 물음표가 국민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그 대표 사례 중 하나다.

첫째, 취임 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유달리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취임 직후부터 한·일 과거청산에 관해 강한 발언들을 쏟아낸 박 대통령은, 2013년 10월29일에는 “문제가 하나도 해결 안된 상태에서, 일본이 거기에 대해 하나도 변경할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그 정상회담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정상회담 개최와 연계시켰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특별한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일까? 설사 그렇더라도 경제와 문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있는 한·일관계를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올스톱시키겠다고 나선 것은 분명 ‘비정상 외교’다.

김복동 할머니(가운데)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단체 시국선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둘째,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최악의 합의’를 덜컥 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정부가 내놓은 것은 한국인 피해자들에 의해 이미 거부된 1995년 국민기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과 국제사회에서의 비난·비판 자제, 심지어 평화비(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취임 후 2년8개월 이상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초강수를 둔 끝에 이런 허망한 합의를 해버린 것이다. 합의 이후 일본은 10억엔을 내놓는 것으로 한국에 대한 과거청산이라는 짐을 벗어던졌다. 아베 총리는 합의를 ‘외교 치적’으로 내세워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고 자민당 총재 3기 연임을 얻어내 최장수 총리와 ‘평화헌법’ 폐기라는 ‘숙원사업’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새로운 갈등을 떠안았다. 박 대통령은 피해자와 시민들이 1990년대 초부터 4반세기 이상 지난한 노력 끝에 어렵게 얻어낸 일본의 법적 책임이라는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합의의 폐기를 주장하는 그들에게 맞서며 전에 없던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누가 봐도 ‘외교 참사’다.

셋째, 다시 그럼에도 그 잘못된 합의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합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명명백백하게 확인되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이행 강행’에 목을 매고 있다. 정부기관도 아니고, 민간단체도 아닌 정체불명의 ‘화해치유재단’ 설립을 강행했다. 일본 정부가 ‘절대로 배상금이 아니고 치유금이다’라고 거듭 못 박는데도 10억엔을 서둘러 받았다. ‘성노예’라는 극한적인 아픔을 겪은 피해자들을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누는 짓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관련 사진도 지웠다.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던 백서 사업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을 중단시키고, 이미 편성되어 있던 예산조차 집행하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에 대해 역사교과서 교사용 지도서에 합의가 게시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주소를 실어달라고 부탁했다고도 한다. 합의에 포함돼 있지도 않은 이 참담한 일들을, 가해국 정부가 그렇게 하더라도 비난받아 마땅할 터인데, 피해국 정부가 나서서 하고 있으니 참으로 ‘괴기스러운 집요함’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실책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마땅히 폐기해야 하고, ‘화해치유재단’은 즉각 해산해야 한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실시해 그 잘못된 합의가 나오게 된 이유, 합의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에 매달리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이 전대미문의 혼란 속에서 ‘박 대통령은 외치만 맡는 수습책’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하나만 보더라도 외치도 맡아서는 안되는 이유는 이미 넘치고 넘친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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