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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큰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소장 판사들이 지난 15일 회의를 열고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과 관련해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독립성이 강하고 판사 개개인이 독립기관이나 다름없는 단독재판부 소속 판사 91명 가운데 53명이 참여했다. 앞서 지난 4월 말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들의 회의 이후 전국 18개 법원에서 11번의 판사 회의가 열렸다. 판사들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법관들의 자유로운 학술활동에 대한 침해는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서 결코 있어서는 안될 심각한 사태”라고 양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양 대법원장의 사퇴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법부 수장을 탄핵한 것이나 다름없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일 차에서 내려 대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사법파동으로 번진 이번 사태는 양승태 사법부의 농단에서 비롯됐다. 판사 통제를 목적으로 한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블랙리스트 운용 등 박근혜 게이트에서 발생한 모든 일이 사법부에서 똑같이 일어났다. 법원행정처를 통해 판사들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난 것이 발단이지만 자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꾸려놓고도 결국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달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양 대법원장은 지금껏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일부 진보 성향 판사들의 사법부 흔들기라는 식으로 되레 물타기를 시도했다.

요즘 대법원은 이상훈·박병대 대법관 후임 선발을 위한 대법관 제청 작업을 벌이고 있다. 대법관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사법부의 최고 요직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아울러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대법관 임명의 제청권을 사법농단의 장본인인 양 대법원장이 행사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그러나 임기에 연연할 상황이 아니다. 양 대법원장 스스로 거취를 정하지 못한다면 타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대법원장 인사권과 법원행정처 권한 축소 등 대법원 개혁 작업도 양 대법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외부 힘으로 강제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후배 판사들의 신임까지 잃은 사법부 수장이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양 대법원장은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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