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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올 들어 부쩍 늘어난 원자력추진파의 모임들이 국민 혈세와 전기요금으로 벌이는 일방적인 홍보활동을 보고 있자니 이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과학’의 기본자세를 견지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추진파들은 국민을 과학에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보고 그저 계몽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적인 안전성을 보장하는 기술은 없다’. 인류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이런 보편적 인식이 과학실험보다 실증성이 높을 수 있다는 점도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1953년 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유엔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을 제창한 후, 금융자본을 앞세운 미국은 세계전략 속에서 동맹국의 젊은 과학자들을 초청해 대학과 연구소에서 원자력 교육을 실시했다. 전략의 주요 목표는 핵산업의 확대·육성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뤄진 대기권 핵실험의 방사능 피해에 대한 반발을 완화시키려는 데도 있었다.
얼굴에 원자력 로고와 원전 반대 구호를 적은 일본 여성 (경향신문DB)
처음 원자력을 접한 동맹국 과학자들은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과 핵분열 에너지 밀도를 마치 절대적인 힘의 원천으로 오인했다. 그래서 원자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미신에 빠지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이 미신은 원자력추진파들 안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원자력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학문처럼 주장하는 관련학자 중에는 원자력이 응용과학으로서 순수과학의 발전에 의지하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자신들이 좁은 실험실에서 행한 매우 단편적인 결과를 근거로 원자력의 모든 것에 통달한 전문가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원전은 100만여개의 부품을 사용하는 복잡한 시스템인 만큼, 전기·금속·기계 등 여러 분야의 기술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일·독을 비롯한 전쟁 당사국에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논쟁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과학이 인류의 행복과 발전을 위하기보다는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로써, 결과적으로는 원자폭탄 형태로 시민의 대량학살을 가져온 점에 대한 반성이 주요 계기였다. 세계대전 동안, 1942년 말 페르미가 개발한 원자로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의 생산장치로 이용되는 등 과학의 군사적인 이용으로 잃어버렸던 ‘과학의 투명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었다.
학문의 근본적인 정신은 ‘자유’라고 한다. 학자는 오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어떠한 이념이나 물질적인 유혹에도 타협하지 않는 연구자세가 불가결하다. 어떤 이해관계에 얽매여 학문의 자유를 잃는다면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최근 막대한 연구비 확보 또는 사회적 지위의 획득 등을 이유로 학문의 자유를 버린 채, 기업논리에서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가 부쩍 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이들은 원전의 안전성같이 사회적 대립이 심한 논쟁이 벌어지면 과학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반대파를 과학의 문외한으로 몰아세우는 작태까지 보인다. 반대로, 원전사고로 방사능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단지 과학의 진화 과정의 시행착오로 돌리면서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에는 문제가 없고, 현장기술자의 잘못만으로 돌린다.
얼마 전에 유명을 달리한, 수은 중독 미나마타병의 세계적 권위자인 하라다 마사쓰미 교수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50년을 오직 피해자 구제에 바친 의학자로서 일본 과학자의 양심으로 불렸다. 그는 전문학자가 열악한 입장의 피해자 편에 서 있을 때야말로 ‘학문의 중립’이 가능하다는 지론을 펼쳤다. 지금이야말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및 학문의 중립성을 성찰하는 이성의 회복이 필요할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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