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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임명을 재가했다. 청와대는 “제기된 의혹들이 업무 수행에 큰 차질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지 25일 만이다. 이 대통령이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등을 돌린 현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이럴 바엔 인권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왜 도입했고, 이 대통령의 인권 의식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근본적 회의가 인다.
난감한 현병철 위원장 (경향신문DB)
이 대통령의 현 위원장 임명 강행은 정권 안보의 논리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비판 여론을 수용해 현 후보자를 내쳤을 경우 지지율 20%를 밑도는 정권의 권력누수가 앞당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을 듯하다. 여기에다 청와대가 연임 배경 중 하나로 밝힌 북한의 인권 문제 제기 등 ‘하청 임무’ 수행에 대한 보은과 그 어떤 사회적 물의를 빚더라도 자신에게 충성한 인물은 반드시 중용하는 이 대통령의 CEO형 용인술이 결합됐을 법하다. 그런 이 대통령에게 인권위원장이 갖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현 위원장의 부적격 사유는 필설로 다 옮길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현 위원장은 첫 임기인 지난 3년간 인권에 역행하는 갖가지 조처와 언행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권위 있는 인권단체들로부터도 지탄의 대상이 돼왔다. 국회법 개정으로 처음 시행된 인권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업무 수행 능력은 고사하고,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도 구비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논문 표절과 아들 병역기피 의혹, 비민주적 인권위 운영 등은 그가 정상인으로서의 판단과 이성만 갖췄더라도 스스로 물러났어야 할 만큼 심각한 결격사유다. 그럼에도 현 위원장을 재임명한 것은 인권에 대한 이 대통령의 몰이해와 이로 인해 빚어진 인권위 모독 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은 이 정권 출범 초기 위원회가 3분의 1 토막 나면서 예고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이번 일은 이 대통령의 용인술이 더 이상 정상적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 징표로 봐야 할 것 같다. 내세울 업적은 없고, 퇴임 이후가 두려운 정권이 드러내는 임기말 정권의 대표적인 속성 중 하나다. 정권의 운명이야 피할 수 없겠지만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을 대내외에 과시한 인권위의 위상 추락이 안타깝다. 더불어 남은 임기 6개월여 동안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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