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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날’이 11월30일에서 48년 만에 12월5일로 바뀐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무역의 날을 바꾸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기념일 규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무역의 날을 바꾼 것은 지난해 무역 1조달러를 돌파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50년 가까이 유지해온 법정 국가기념일을 바꾸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변경 과정이 불투명한 것은 더 큰 문제다. 기념일 규정 개정안의 내용이 입법 과정에서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오죽했으면 무역업계조차 황당해하는 분위기일까.


무역의 날은 1964년 박정희 정부가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수출의 날’로 정했다가 1987년 무역의 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당시 수출의 날은 한국이 본격적인 개방국가, 공업국가, 수출국가가 됐음을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1조원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기념일을 바꿨다. 무역의 날이 변경되면 각종 사전이나 교과서의 무역의 날 설명도 달라지게 된다. 박 대통령 시절의 수출증대 정책 얘기는 사라지고 현 정부의 성과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무역의 날 변경에 이명박 정부의 업적을 기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46회 무역의 날 기념식 및 수출 세계 10강 진입 기념 오찬에서 축사하는 이명박 대통령 (경향신문DB )


기념일 규정을 바꾸는 과정에 국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절차도 소홀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3월 홈페이지를 통해 2주간 의견을 묻고 4월5일 고작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가졌을 뿐이다. 이어 지식경제부를 통해 무역의 날 개정 의견이 행정안전부에 제출되고, 행안부는 지난 6월11일 기념일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행안부도 입법안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알리지 않고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끝냈다. 전체적으로 뭔가 뚝딱 해치우려 했다는 의혹이 짙다.


최근 정부 부처가 각종 법령을 개정하면서 국민에게 적극 알리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여론의 비판을 받을 만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행정절차법을 보면 ‘행정청은 입법안의 취지, 주요 내용 등을 관보·공보나 인터넷, 신문, 방송 등의 방법으로 널리 공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정부 부처는 관보 외에 자체 홈페이지에만 슬쩍 게재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법 위반은 아니지만 ‘널리’ 공고해야 한다는 입법예고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입법예고 제도가 명실상부하게 시행될 수 있도록 개선책이 강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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