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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와 친박 세력이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을 제기했던 점을 고려하면 개헌론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부추기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제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거론한 것이 바로 개헌을 고리로 한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개헌론을 제기하면 탄핵의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내놓은 게 바로 담화이다. 야권 내 일부도 개헌을 주장하므로 야권을 분열시켜 탄핵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던 지난달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느닷없이 개헌을 제안해 정국 반전을 꾀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개헌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그 카드로 판을 뒤흔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 뒤편으로 나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무엇보다 허다한 정치·사회적 과제를 개헌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옳지 않다.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시민 의사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한국 사회의 권력이 된 재벌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하청을 받는 청부업을 청산하고 독립적 주체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는 정당체제, 정치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 방송개혁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과연 가능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시민이 하라는 개혁은 안 하고 헌법 타령을 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개혁해야 할 낡은 정치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 국면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개헌으로 판을 흔들어 보겠다며 헌법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을 모욕하는 처사이다. 지금의 개헌 논의는 여야의 대선주자들과 여러 세력들이 대통령 중임제니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자기에게 유리한 권력 구조로 바꾸려고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헌이라는 거대 이슈를 꺼내들어 일반 시민들을 배제하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 개인적인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정치인의 바른길이 아니다. 그래도 굳이 개헌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대선에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하고 대선 이후 그 결과에 따라 논의하면 될 일이다.

지금 국회가 할 일은 시민들이 이미 마음으로 탄핵한 박 대통령을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개헌론을 꺼내겠다면 그것은 촛불에 대한 저항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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