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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신뢰는 10%도 안된다. 처음 만난 사람보다 정치인을 더 믿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선거 때면 민의를 받들겠다고 하다 당선 후 민심에 역주행했던 사례는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걸핏하면 시민의 대표라면서 유권자와는 다른 그들만의 세상에 살아왔다. 국회(國會)의원을 가리켜 나라를 해롭게 하는 ‘국해(國害)의원’으로 불릴 정도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면 정치가 망가지고 정치가 망가지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시민의 삶도 위협받는다. 박근혜 게이트가 바로 생생한 증거다. 박근혜 정권이 남긴 구체제를 청산하는 과업도 정당이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당은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 되어 있다. 정당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이다.

정당개혁은 고장난 대의(代議)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참여를 강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촛불집회는 제도권 정치를 우회한 거리의 정치였다. 시민과 소통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한 결과였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직접민주주의의 장으로서 정당의 의미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기성 정당은 더 이상 주요 의사결정을 독점할 수 없다. 식견 있는 시민들의 등장으로 대의제 정치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졌다. 시민주권 시대에 걸맞게 취약한 대의정치를 보완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 장치가 필요하다.

정당은 보스 정당에서 당원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정당은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개인화된 정당이다.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대선후보의 영향력이 곧 정당의 힘이었고, 당은 집권의 주체라기보다 집권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선거캠프가 집권하는지, 정당이 집권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새누리당·민주당 정권이라기보다 박근혜·이명박 정권,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부르는 게 현실이다. 정당이 집권해 국정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선거캠프가 정권을 잡고 국정을 좌지우지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다음 어느 정권에서도 제2의 최순실이 나올 수 있다. 제왕적 대선주자와 그의 계파가 당을 장악하고 운영하다 보니 의원들의 자율성은 극히 낮은 수준을 면치 못했다. 정당정치는 제왕적 당 대표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당원의 참여를 넓히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다.

정책에 관한 한 정당은 무책임하고 무능했다. 집권당은 ‘대통령표 정책’이라면 합리적 논의 없이 거수기 역할을 해왔고, 비판 의견에 대해선 대통령에게 충성하지 않는 배신자로 찍어내기까지 했다. 야당은 시민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권 정당이라기보다 비판 역할에 머물렀다. 그 결과 정책과 비전이 아닌 파당적 이해로 대립하고 거대 양당이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해괴한 구조가 이뤄졌다. 정당이 개인 플레이에 의존하니 선거에도 약하고 집권 후엔 더 약하다. 정치의 복원은 정책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인물과 파당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정치가 아니라 비전과 대안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정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당론투표는 최소화해야 한다. 잦은 강제적 당론투표는 대립과 갈등의 주범이다. 개별적 헌법기관으로서의 의원의 역할과 권위는 자유로운 의사 표시에서 시작된다.

공천은 혁명 수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공천은 정당의 핵심 기능이요, 정치 엘리트 충원의 중요한 첫 단계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인물을 가려내기는커녕 파당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찍고 내리꽂는 자의적 공천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됐다. 인적 쇄신을 통한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결과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동조하는 공직 후보자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출하는 일이 급선무다. 당은 시민교육에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시·도당에서부터 인력 공급 차원의 시민, 청소년을 위한 정치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후보 선출 과정의 개방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유인책이다. 현역 의원과 신인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공천이 당 지도부나 계파에 의해 휘둘리지 않기 위해 표준화된 공천지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당은 시민들의 참여를 대폭 늘릴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 정당구조에서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극히 소수라는 현실은 대중 정당의 허상을 말해준다. 정당 예비선거에서 시민 참여율은 매우 낮은 데다 동원 투표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일회성 당원도 있다. 시민들이 기존 정당 질서에 강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원의 권한이 훼손되지 않고 정당 응집력을 유지하면서 시민 참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당 재정이 과도하게 국고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러니 인적 기반인 당원 확충에 신경 쓸 필요가 사라졌다. 의석수 기준의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을 재고해 볼 때가 됐다.

광장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는 함께 가야 한다. 시민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치는 뒷걸음질쳐왔다. ‘일류 시민, 삼류 정치’는 틀린 말이 아니다. 촛불은 곪을 대로 곪은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는 열망을 담고 있다. 기존의 낡은 정당 체제, 구태의연한 정당 운영으로는 이 열망을 살려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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