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그제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북한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했다는 내용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에 관한 의견을 밝혔다. “구체적이고 사리에 맞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실이나 진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의 집요한 부추김에 답변한 것이지만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정보기관의 수장이라면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여야간 정치적 갈등 사안에 대해 국정원장이 공식석상에서 개인의견을 밝히는 것은 직업윤리를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정보를 다루는 책임자가 사실과 증거 등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보기관은 정치평론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2013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정쟁을 유발, 불신을 자초하고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된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

국정원을 국내 정치에 끌어들인 이완영 의원의 행태는 더욱 심각하다. 이 의원은 정보기관이 ‘송민순 회고록’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이 원장을 몰아붙여 끝내 억지 답변을 얻어냈다. 그렇게 해서 여당이 잠시 이득을 얻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유리해질지는 몰라도 그 대가로 국정원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의원은 이 원장의 말을 왜곡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 원장이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먼저 북한 의견을 물어보자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렇게 하자고 결론 낸 게 맞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했다. 그러나 이 원장은 부인했다.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냈다면 이건 정치적 사기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다. 민감한 정보사항을 다루는 정보위원으로서 자질을 의심케 하는 행태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를 둘러싼 의혹을 덮기 위한 의도로 짐작이 가지만 그렇게 해서 덮어질 의혹이 아니란 것은 누구보다 이 의원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당 의원이 유도성 질문을 하고 국정원장은 여당에 유리한 정치적 발언으로 맞장구를 치는, 저질 정치 쇼에 시민이 현혹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 의원은 시민을 우롱한 일을 사과하고, 이 원장도 발언 취소는 물론 자신의 실수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