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중에 <가장(家長)의 근심>이란 글이 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이 제목을 볼 때마다 나는 자식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나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근심을 떠올리곤 한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갖는 변함없는 감정이 근심과 두려움인 까닭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나 행동을 보면 근심과 두려움이 먼저 솟구친다. 흐뭇하거나 대견할 때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드물고, 대개는 애들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친구들한테 거짓말을 하거나 믿음을 못 주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아이는 다름 아닌 부모 하는 대로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이의 모습에는 부모의 얼굴뿐만 아니라 성격과 언행, 심지어 분위기도 배어 있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니 내 집 큰아이는 정말 공부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삼수 끝에 운좋게 대학에 들어갔다. 다행히 요즘은 학교생활을 재미있어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이어질지. 사내인데도 스킨케어(skin care)니 뭐니 제 쓰는 샴푸는 따로 있고, 샤워 후면 화장(?)을 하는지 뭘 하는지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뿐이랴. TV드라마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뭐라고 타박하면 이전과는 다르다고, 요즘 드라마는 얼마나 재미있고 참신한지 열변을 토한다. 어리석고 어리석다. 그래도 관심을 나눠야지 싶어 나도 <내 딸 서영이>를 주말에는 같이 보곤 한다. 그래도 돌아오는 것은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
중학교 다니는 둘째 아이도 다르지 않다. 1학년 1학기 때는 38명 가운데 정확히 38등 하더니, 요즘은 좀 나아졌나. 천방지축이어서 진득하게 앉아 있는 법이 없고 몸 성할 날도 드물다. 이런 아이에게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 이런 말이 무슨 소용있겠는가. 워낙 축구를 좋아해 방에서도 야구공으로 드리블 연습하느라 야단이다.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그것도 욕심인 것인가. 마음을 다스리려고 주말에는 국화 화분을 하나 사 왔다.
자식 키우는 일의 어려움은 옛사람에게도 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집 마당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살았다 해서 ‘오류(五柳)선생’으로도 불렸던 도연명의 시집에도 ‘자식을 꾸짖음(責子)’이라는 시가 있다.
“양쪽 귀밑머리 희게 변하니 살갗도 이젠 팽팽치 않네. /다섯 아들 있어도 종이와 붓을 모두 좋아 안하네. /서(舒·큰아들)는 이미 열여섯인데도 게으르기 짝이 없고 /선(宣·둘째)은 열다섯이 되어감에도 공부하길 싫어하고 /옹(雍·셋째)과 단(端·넷째)은 다 같이 열세 살인데 6과 7을 구분 못하고 /통(通·막내)은 아홉 살이 되었는데도 배(梨)와 밤(栗)만 찾네. /하늘의 운이 참으로 이러하니 술잔이나 또 기울일 수밖에.”
소동파가 ‘백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인사(百世士)’라면, 도연명은 흔히 ‘천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인물(千載人)’로 불린다. 그는 명리(名利)를 멀리하고 자연과 벗하며 살았지만, 이 뛰어난 시인도 자식교육에는 힘들어했던 것 같다. 자식이 부모 뜻에 어긋나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부모 뜻대로 되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그래서 시인은 모든 걸 천운(天運)으로 여기고 술잔을 기울인다.
두 아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결국 인생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 네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한해살이풀의 생애를 일흔 번 더할 뿐인 삶을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며 살지, 어떤 일이 가장 즐겁고 의미 있는 것인지 네 스스로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네 삶의 방식을 택할 자유는 오직 네 손 안에 있다고. 부모는 단지 옆에서 그 결정을 잠시 도울 뿐.
배운다고 절로 어진 자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배우면서 어리석음도 줄여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더디고 더딘 먼 길이다. 그래서인가. 막 맺혀가는 국화봉오리를 요즘 나는 아이들 얼굴보다 더 자주 쳐다보게 된다.
'=====지난 칼럼===== > 사유와 성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유와 성찰]금서가 된 우수학술도서 (0) | 2012.11.02 |
---|---|
[사유와 성찰]바보야, 문제는 상식이야 (0) | 2012.10.19 |
[사유와 성찰]고종석의 절필, 피로와 배반 사이에서 (0) | 2012.10.05 |
[사유와 성찰]추석, 강남스타일로 놀아볼까 (0) | 2012.09.28 |
‘사장님’들의 나라를 위하여 (0) | 2012.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