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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과거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름다운 예술과 만나기 위해 공연이나 전시 혹은 관람에 나선 사람은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기 십상이다. 새로운 예술은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이제 기괴하고 기형적이며 더럽고 험한 세계를 적나라하게 들추고 고발하면서 스스로 추해지고 있다.
예전엔 참하고 착한 사람을 예쁘다고 했다. 진·선·미가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현대는 어떤 이가 참하고 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참하거나 착하지 않기 때문에 예쁘다고 말하는 사회다.
그만큼 진·선·미를 함께 갖추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진과 선을 지향하는 예술은 점점 추해질 수밖에 없다. 거꾸로 세상이 더러워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예쁜 것에만 현혹되니 예술이 설 자리만 좁아진다.
‘나는 예쁘지 않다, 나는 아름답다’는 카피로 많은 이를 유혹한 광고가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 기억에 광고 모델은 아름답기보다 그저 드물게 예쁜 여인이었다.아름다움과 예쁨을 나눌 수 있는 하나의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만들어 볼 수는 있다. 겉으로라도 조화와 균형의 형식을 갖춘 말끔한 사물이나 사람을 예쁘다 하고, 겉과 속 모두 자유롭지만 알 수 없는 긴장에 휩싸인 비극적 사물이나 그런 방식으로 참(착)한 사람을 아름답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면 대부분이 예쁘기보다 아름다워지고 싶다할 것이다. 기만이다.
우선 예뻐지고 보자.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몸의 형체를 통째로 바꾸거나 얼굴 모양을 다양하게 고칠 수 있는 성형수술이 있다지만 지불해야할 대가와 위험이 작지 않다.
아마도 수많은 방법 중에 적은 비용으로 가장 안전하게 예뻐지는 길은 미용(이용)일 것이다. 실제로 미용실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는 곳이 아니라 자기를 찾아서 가꾸고 표현할 수 있는 ‘자기 디자인’의 장소다.
전남 옥과장 초입에 있는 10여㎡ 남짓한 미용실 (출처: 경향DB)
어느 문화에서나 한 사람의 머리모양은 그의 사회적 신분, 지위, 역할만이 아니라 그의 처지를 나타내는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가짐과 상태를 드러내는 윤리적 기호였다. 조선인이 1895년 반포된 단발령을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리를 자르라는 사형선고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조선에도 다양한 형태의 머리모양을 연출하는 미용이 있었으니 자연스레 머리카락을 줄이고 보태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모양을 낸 장발과 단발은 미용이지만 강제로 잘린 머리카락은 한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의 머리와 같다.
그렇다고 단발을 택한 사람이나 이를 도와준 이발사들이 매국노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비록 타율적 단발령에는 반대했지만 그것이 봉건적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미용이 되길 바랐다.
실제로 앞서 단발을 했던 유길준은 개화 교육과 계몽 운동을 이끌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끝까지 헌신했다. 고종 황제와 세자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양반 이발사 안종호를 비롯해 진업미용공사(眞業美容公私)나 상해정안사로미용공사(上海靜安寺路美容公私)에서 일했던 대부분의 미용사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미용실에는 더 이상 신분 질서의 고통이나 단발의 굴욕 따윈 없다. 미용은 이제 진·위와 선·악의 저편에서 예쁨을 추구한다. 더구나 예술을 지향하는 미용은 예쁜 자기표현이나 아름다운 자기 디자인에 만족하지 않고 미·추의 경계에서 새로운 충격을 전시한다. 4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 국내 유일의 ‘한국미용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미용의 역사는 곧 예술사다.
그 곳에는 20년간 유물을 모으고 상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여인의 머리모형과 복식을 재현하며 홀로 꿋꿋하게 박물관을 만들어온 이순이라는 참(선)한 미인이 있다. 광주에는 90만이 넘는 현재의 헤어디자이너만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미용인의 자존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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