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나는 가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집단주의적이지 않은가, 이 땅에 참된 개인주의의 역사는 있는가라고 묻곤 한다. 주기적으로 불어대는 사회적 열풍이나 유행을 보면 특히 그렇다. 조기유학과 성형 바람이 한창 불더니 요즘에는 ‘힐링’으로 곳곳이 들썩인다. 루소 탄생 300주년과 관련한 외신의 이런저런 논평을 읽으면서, 또 그의 책을 다시 뒤적거리면서 갖게 되는 생각도 그렇다.
루소는 흔히 <고백>이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같은 문학적인 작품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사회계약론>이나 <인간불평등기원론> 같은 사회정치적 저술로 더 유명하다. 그는 당대의 편견과 불합리한 정치현실에 맞서 싸운 부르주아 사회의 투사였다. 편지소설인 <신 엘로이즈>가 1761년에 출간되었을 때 유럽 전역이 들끓었다. 여기에는 농촌공동체와 수공업적 덕성 그리고 계몽의 정신이 혼재된 지역 코뮌이 묘사되어 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신 엘로이즈>와 <에밀>을 읽었고, 이 책들은 프랑스 혁명 전까지 100쇄 이상을 기록했다. 루소가 없었더라면 프랑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 <사회계약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역사적 맥락이 아니더라도 루소의 글은 생생한 느낌을 준다. 어디에서나 풍부한 감성이 꿈틀대고 깊은 사유가 있으며 고민하는 실존과 자유로운 정신이 있다. 숨기지 않는 감정, 논쟁과 파벌에 대한 혐오, 아첨의 거부, 전원에의 사랑, 행복의 갈구는 그의 삶의 한결같은 모토다. 그는 호사와 빈곤을 같은 눈으로 보면서 재산과 여론을 초월해 자족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천성과 자기분수에 맞는 영역으로 돌아가고자 애썼다. 자유란 원하는 걸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그는 썼다. 그는 어떤 일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통하길 바라지 않았다.
스위스 철학자이자 문학자로 프랑스 계몽주의이 대표적 사상가 루소. (출처: 경향DB)
루소의 사상은 매우 다채롭지만, ‘평화로운 사회의 자유로운 인간’쯤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유는 미움을 모르는 자기애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가장 내밀한 의미에서 자유롭고, 이 자유의 의지로 품위 있는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독단과 기적이 없는 평화로운 공동체는 인간이 두 발로 딛고 선 채 스스로 절대독립의 삶을 추구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근대 이후의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판단에 비춰 자기의 가치를 정하고, 자기에게 얼마나 유용한지에 따라 타인을 평가한다. 여기에서 탐욕이 생기고 사회적 억압과 소외가 일어난다. 그러나 악은 루소가 보기에 인간이 아닌 제도에 있다. 교회나 국가 같은 제도기관이 자연적 인간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낙원은 자연과 영혼적으로 하나가 되는 시적 일치 속에서 실현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루소는 즐겨 숲속을 거닐고, 풀과 나무를 사랑하며, 강과 호수와 외딴곳을 자주 찾았다.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잔혹한 복수방법은 스스로 행복해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자기존재를 수축시키고 구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의 자기애는 실리적이다. 그것은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이다. 따라서 나쁜 것은 자기애가 아니라 이기심이고, 이기심을 야기하는 시기와 증오다. 정의에의 요구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심의 표현일 때도 많다. 미움이야말로 자기 안의 절실한 목소리를 외면케 한다는 점에서 가장 파괴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처럼 과열된 경쟁사회에서 ‘고독’이나 ‘개인주의’ 혹은 ‘자기애’를 말하는 것은 허황되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허황된 것인가? 자연스러운 자기애는 그 어떤 도덕보다 도덕적이다. 증오와 이기심(amor propre)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사랑 속에서 사회적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떨까? 루소는 참된 개인주의자였던 것 같다.
'=====지난 칼럼===== > 사유와 성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유와 성찰]추석, 강남스타일로 놀아볼까 (0) | 2012.09.28 |
---|---|
‘사장님’들의 나라를 위하여 (0) | 2012.09.23 |
[사유와 성찰]미용박물관에서 만난 예술의 역사 (0) | 2012.09.07 |
[사유와 성찰]권력의지와 정치논쟁의 품격 (0) | 2012.08.31 |
[사유와 성찰]안철수 지지의 조건 (0) | 2012.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