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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를 내건 한 모임에서 변호사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젊지만 이미 사회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법조계의 대표적인 정의파이자 진보파였다.
 

시원시원한 성격인지라 첫 대면에서 으레 갖게 되는 어색함을 금방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한참 거듭된 그의 말과 행태를 듣고 보면서, 좀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고 할까? 뭔가 주장은 주장인데 세상의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들에 관해 거침없이 표현한다고 할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나 행태에 대한 비난이야 이미 이 동네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렇다 쳐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여러 사회운동단체 나아가 그곳에서 활동하는 여러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의 비판은 강하고 격렬했다.




말의 내용이나 논리에 대해서는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듣고 있는 나를 거슬리게 한 것은 그의 큰 목소리와 공격적인 용어 선택이었다. “에고, 여기 싸움난 줄 알겠네요” 하며 소리를 좀 낮췄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지만 “누구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라며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있기에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었다.
 
멋쩍게 웃고는 그냥 들어줘야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래도 마음은 자꾸 불편해졌다. 그럭저럭 자리를 끝내고 일어설 때가 되었고, 그래도 좋게 헤어져야지 하는 생각에 “세상이 마음 같지가 않아 화가 많이 나시나 봐요”라는 말을 건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분노는 운동의 힘이잖아요. ‘분노하지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하하하.”

합리성이 결여된 열정의 한계

분노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해 묵인하지 않겠다는 결단일 때가 많다. 인간 사회가 불평등과 부정의를 줄여 갈 수 있는 것은 그런 현실에 대한 누군가의 분노 때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부모형제의 도움과 희생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안락한 삶에 안주하기보다 타인의 고통과 불합리한 사회현실에 분노하고 뭔가 개선을 위해 열정을 갖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분노와 열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도 많다는 사실이다. 분노와 열정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라 할지라도, 그래도 뭔가 가치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으려면 이성과 합리성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공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차이와 이견이라면 무례한 비난에 앞서 건설적 대화의 길을 찾는 노력을 충분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견으로부터도 배우고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해주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잘못을 따져야 할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한 차원 높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일의 오류와 한계를 넘어서는 실력을 같이 쌓아갈 수도 있다.

설령 옳은 일이라 해도 모든 것이 다 따져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의 구조가 스스로 드러나길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점에 관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때가 많다.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을 구분해야 하고, 누가 더 옳은가를 다투는 일과 공동의 협력적 실천을 통해 성과를 내는 일의 기쁨을 향유하는 것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조직도 견뎌낼 수가 없다.

‘작은 차이’를 공유하는 지혜를

뭔가 크고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더 많은 이견과 차이, 갈등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작은 차이 때문에 협력 못하고, 공존하기보다는 대립하고, 그러면서 ‘분노는 나의 힘’을 외쳐대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무슨 일을 이룰 수 있을까.

말의 내용은 단단하고 행위의 결단은 견고하더라도, 말의 방법은 부드러워서 차이를 갖는 여러 사람들이 머물 심리적 공간을 넓히고, 그러면서 함께 일을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행복함의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는 실천적 지혜가 우리 동네의 규범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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