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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건종 | 숙명여대 교수·영문학
집권 여당과 보수세력은 ‘친서민’이나 ‘중도실용론’을 내세울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활기를 띠고 있다. 무상복지가 얼마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인 정치공학적 발상인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것이 이들의 정체성에 훨씬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민주당은 ‘무상’이라는 명칭의 적절성에서부터 시작해 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어 가는 데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진전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집단 간 근본적인 대립의 지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자유가 분배를 해결할 수 있나
신자유주의는 자유로운 시장이 경제적 자원 증대의 가장 효율적인 기제일 뿐만 아니라 가장 공정하고 윤리적인 분배의 제도라는 신념에 기초해 있는 체제이다. 자유 경쟁의 효율성과 윤리성, 사적 영역의 자율성, 개인의 권리와 책임과 같은 가치들이 시장의 신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공공성, 공동체, 평등과 복지는 이 가치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소유의 자유의 전도사라고 할 수 있는 하버드대 리처드 파이프스는 복지국가 제도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단언한다. “오늘날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독재나 폭정이 아니라 평등이다. 바로 보상의 평등이다.” 보상의 평등에 대한 불만에는 시장의 분배 기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들어 있다. 그에게 복지란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발휘해서 정당하게 자기 몫을 가져간 사람들이 열등한 경쟁의 낙오자들에게 베푸는 시혜이다. 이 시혜가 국가나 공동체에 의해 강요될 때 소유의 자유는 결정적으로 침해받는다.
소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용납 못하는 것은 한국의 보수도 마찬가지다. 복지 포퓰리즘, 복지병, 복지 바이러스는 도덕적 분노의 표현이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서 건강한 사회적 생태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복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세금밖에 없다.
복지국가가 신자유주의 신봉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또 하나의 팩트가 있다. 모든 노동과 생산은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다고 해서 이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회의 전체적 자원과 부는 개별적인 경제 행위자들의 독자적인 이윤 추구 행위를 통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서로 의존하면서 연결되어 있는 노동과 생산의 네트워크를 통해 산출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적 부의 생산과정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해 주는 공동체적 행위다. 이것을 인정해 주는 공동체는 공정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이기도 하다.
개인 기본권과 사회안전 위한 일
‘무상’이라는 말은 정치적인 수사로도 그리 효과적인 말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복지는 무상이 아니다. 복지는 공짜도 아니고 시혜도 아니다. 복지는 이 땅에 태어나서 일하고 먹는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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