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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집 전화가 팩시밀리 겸용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의 실직이 있던 해였다. 지방 기업에 철공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아버지는 쇠를 두드려 가공하는 ‘단조(forging)’가 전문 분야였다. 외환위기가 왔던 그해 아버지는 25년간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팩시밀리는 아버지가 가내에 차린 1인철공의 유일한 사무용품이었다. 외국 기업에 팩스를 보내 기계 장비를 들여오는 일. 그 기계를 배로 들여와 국내 업체에 세팅해주고 수수료를 받자는 게 아버지가 구상한 실업 대책이었다.
그해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팩시밀리는 잠잠했고 그 옆으로 메모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메모지엔 기계 부품들의 알루미늄 재질, 사이즈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야심찬 ‘오파상 기획’은 곧 흐지부지되었다. 외국으로부터 오퍼가 없었던 것이다. 초겨울이 시작될 무렵 아버지는 경기 김포시의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아버지는 이후로도 회사를 옮겨 다니며 10년이나 더 직장생활을 하셨다. 평생 단조 기술 한 우물만 파온 전문성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2007년 이른 봄,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출판사를 차린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펄쩍 뛰셨다. 평생 봉급쟁이로 살아온 그로선 창업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의 일이었다. 처음엔 걱정하던 아버지도 우리가 낸 책이 신문과 방송에 나오고 대형서점에 깔리자 눈길이 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본가에 갔을 때 내게 원고 뭉치를 내밀었다. 단조 인생 40년을 정리한 것이니 출판을 검토해보라는 얘기였다. 연탄을 나르던 젊은 시절부터 취업해서 적응하던 이야기, 기술도입을 위한 해외출장 등 엔지니어의 반평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절반이 자기 자랑이었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기술 엘리트의 말석을 차지해온 자부심이 한국 산업화 시대의 열정을 축으로 삼아 전개되는 구조였다. 출판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자리도 못 잡았는데 가족의 책을 의무감으로 내기는 싫었다. 아버지는 부담 가질 필요 없다며 노트를 거둬갔다.
2017년,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간 아버지는 ‘공돌이’에서 ‘책돌이’로 거듭났다. 책을 쓰기 위해선 책을 읽어야 한다며 평생 쳐다보지도 않던 책을 잡았다. 처음엔 내가 본가에 남겨두고 온 책을 보시더니 점점 온갖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독서하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옮겨 적은 두툼한 노트가 스물네 권째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10년 전 아들한테 ‘빠꾸 맞은’ 자서전을 고쳐 쓰기 시작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감화받은 아버지는 현대사와 개인사가 교차 반복되는 그 소설의 병렬구조를 차용하겠다고 큰소리도 치고, 늦게 배운 컴퓨터로 직접 타자를 쳤다.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e메일로 원고를 투고하니 다시 검토해보라는 얘기였다. 자식한테 ‘거절’당하고 의기소침 5년, 다시 절치부심 롤모델을 찾아 독서부터 개고까지 5년을 보냈으니 나로서도 감회가 남달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원고를 보니 과연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한 장에 100개씩 나오던 “나는”이라는 인칭대명사가 대폭 줄었고, 내용도 풍부해졌다.
며칠 전 아버지와 출판계약을 맺었다. 마침 73세 생신을 맞아 형네 가족과 함께 모인 수원 본가의 저녁 자리에서였다. 두 분이 어머니의 고향인 속초를 다녀오셔서 식탁엔 청어, 광어, 방어, 문어 모둠회가 놓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출판계약서를 내밀자 아버지는 깜짝 놀라셨다. 계약금 100만원에 인세도 10%를 주는 표준계약서다. 아버지는 “그, 요즘 자비출판 많이 안 하나. 내가 돈을 낼라꼬 했는데 니가 그카면 우짜노”라고 하셨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는지 순순히 수용하셨다.
나는 원고에서 개인적인 얘기는 좀 빼고, 기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다. 부품에 하자가 생겼을 때 극복하기 위해 애썼던 과정, 해외로부터의 기술도입과 기술국산화 과정, 1970~1990년대 기업 조직문화의 변화 등 필요한 부분은 인터뷰를 통해 보강해 엔지니어의 삶, 그중에서도 그토록 입만 열면 찬양하는 단조의 위대함과 한국 현대사를 같이 흘러가게 해보자고 했다. 책에 담길 것은 아버지의 삶이지만 동시에 아버지들이 일군 산업혁명에 대한 내용이다. 오랜 시간 달구고 두드리며 지난한 과정을 견딘 그들의 힘이야말로 산업혁명의 동력이 아니겠는가.
가슴 벅찬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뜻밖에 머릿속에서는 계속 한 생각이 맴돌았다. ‘그런데 교정은 누가 보지? 인터뷰는 누가 하고?’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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