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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학교 교육만 받아서는 세상을 잘 살 수 없다. ‘어려운 남을 도와주라’는 구절을 보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돈은 물론이고 우정까지 잃게 마련이다. ‘늘 정직하라’는 말에 꽂혀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부장님에게 “능력도 없으신데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게 신기하다”고 한다면, 더는 회사에 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용도로 치부하되, 삶에서 필요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또는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배워야 한다. 

후자의 지식이 어려운 것은 시대가 바뀌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서, 수시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 정권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검사는 대통령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는, 어느 검사의 오래된 푸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검찰이 대통령보다 더 세다’라는 게 상식이 되고 있다. 이 주장을 하는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충실한 지지자인 소위 ‘문빠’들인데, 이들이 거의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누비며 이 논리를 들이미는지라 지금은 대통령이 더 세다고 말하는 이가 크게 줄었다. 

자기들이 사랑하는 대통령이 검찰에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파하다 보니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인데, 지난 정권 때만 해도 이들이 “검찰이 대통령 눈치만 본다”며 분노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심지어 현 정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했을 때만 해도 문빠들은 ‘긴장해라. 적폐들아’라며 환호를 보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이 이 사회를 이끄는 실세인 만큼, 다치지 않고 살려면 그들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삶의 지표로 쓰는 수밖에. 

또 하나 알아야 할 점은 이런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 때 의학이 발달하는 것처럼, 삶의 지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르르 쏟아진다. 예컨대 조국 사태 때 체득한 지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표창장 위조. 인턴확인서 위조. 사모펀드 비리: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장관직에서 물러날 범죄였겠지만, 이젠 아니다. 이것들은 검찰이 마음먹고 조사하면 누구한테서든 적발할 수 있는 일상적인 행위이니, 예수쯤 되는 분이 아니라면 함부로 욕해서는 안된다. 

-컴퓨터 안에 비리에 관한 증거가 있을 때 그 컴퓨터를 몰래 빼돌려 차 트렁크 안에 감추는 행위: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증거인멸’이겠지만, 이젠 아니다. 검찰이 증거를 조작할지 모르니까 자기변호 차원에서 증거를 보전하는 행위다. 또는 집에서 일하기 위해 컴퓨터를 잠시 가져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SNS: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쓰는 매체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타인을 욕하면서 자신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 자신이 절대 지키지 않을 것들을 마구 써대는 곳’으로 바뀌었다.

-피의사실 공표: 과거엔 국민 여론을 결집시켜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이를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도 어느 정도는 이것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피의사실 공표는 검찰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흘리는 악질적인 행위로 그 개념이 바뀌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조국 법무부 장관 시절 이런 행위가 전면 금지됐다. “요즘 왜 조국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배움이 부족한 분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에서도 배울 점은 차고 넘친다. 

-민정수석실: 원래 대통령의 친·인척을 감시하는 곳으로 알려졌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고래고기 등 울산 앞바다에 사는 동물도 ‘친·인척’의 범주에 포함됐다. 

-캠핑장: 원래는 ‘산이나 들 따위의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야영하는 장소’를 뜻했지만, 지금은 ‘후보자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 전략을 짜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어떤 이의 취미가 ‘캠핑’이라면 그는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일 확률이 100%다. 

평소 알던 상식이랑 달라서 당황하겠지만, 원래 배움이란 어려운 법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변하지 않는 지식도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극한직업’이라는 게 대표적인 예다. 

박근혜 정부 때 대변인을 했던 정연국을 보자. 그가 카메라 앞에서 진땀을 뺄 때 사람들은 그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됐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내막도 잘 모르면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그의 처지가 딱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뀐 지금, 사람들은 해명을 한답시고 연일 카메라 앞에 서는 고민정을 보면서 같은 반응을 보인다. “고인이 되신 동부지검 수사관이 울산에 내려간 것은 울산시장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청와대는 하명수사를 지시한 바 없습니다.” 고민정씨, 많이 힘들죠? 저희도 힘드네요.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담아야 하니까요.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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