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재인 정부, 민주적 진보는 몇 발을 뗐을까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이 코앞이니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민주체제 시작은 왕조와의 싸움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특정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권력을 쥐는 체제에의 저항이었죠.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민주체제는 여러 갈래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분배라는 큰 방향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수가 독점하던 권력을 성격에 따라(입법·사법·행정), 지역에 따라(연방제·지역분권제), 능력에 따라(노조·언론·학생·시위대) 나누면서 그 체제는 발전했죠. 

권력이 분산되면서 불확실성도 증가합니다. 민주체제는 불확실성을 제도화하며 진보했습니다. 그 핵심이 선거죠. 선거는 불확실성을 정기화한 제도입니다. 4년에 한 번씩 국회의원은 커다란 불확실성을 마주하죠. 재선될 수도,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쩌다 한 번씩 시장에도 나오고, 보통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권력 분산, 불확실성 증가는 그런 면에서 민주체제의 중심이고 이를 통해 권력자가 아닌 시민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게 민주체제의 가치입니다. 제한도 있고 지연도 되지만 이를 향해 가는 게 민주체제의 진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문재인 정권 2년이 지났지만, 비민주적 법안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개혁의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양심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죠. 게다가 이 법의 악용으로 많은 이들이 피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가공무원법도 있죠. 이 때문에 공무원도 노동자이지만 헌법이 명시한 노동3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경우에서 보듯 헌법과 법률에서 인정한 노조할 권리를 대통령령으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국내외 지적이 꾸준히 이어져 왔고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개선을 주장했죠. 하지만 국가보안법 개정은 논의조차 안되고 있습니다. 노동3권 확대도 무관심합니다. 재벌개혁은 물 건너갔고 소비자 권리를 강화해줄 집단소송제도의 행방도 묘연합니다. 민주 가치의 중심이 되는 입법개혁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죠. 

지난 4월 민주당과 야 3당은 “본회의 표결 시에는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 순으로 진행한다”며 이들의 신속처리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민주당의 정치적 손해가 예상되는 상태에서 이뤄진 합의였기 때문이죠. 중앙선관위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20대 총선에서 각각 123석과 122석을 얻은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석은 선거법 개정안 적용 시 각각 107석과 109석으로 줄었습니다. 소수당은 큰 득을 봤죠. 두 거대정당이 움켜쥐었던 의회 권력을 다양한 정당들이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연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민주당은 “공수처 법안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데 당력을 집중”한다고 밝혀 선거법 처리를 미뤘습니다. 공수처가 검찰 권력을 나누게 될지, 오히려 두 배로 키울지 잘 모르겠지만 민주체제의 진보라는 면에서 선거법 개정보다 급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한국당과의 정치투쟁에 밀릴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었을 겁니다. 어차피 다 개혁이니 순서만 조정한다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투쟁에 익숙합니다. 안으로는 반독재 투쟁이, 밖으로는 반북 투쟁이 이어졌죠. 투쟁이 혹독했던 만큼 생채기는 깊고 흉터는 컸습니다. 그래서겠죠. 독재는 끝났고, 북한은 달라졌어도 아직 그 상처를 핥고 보듬는 것 말이죠. 그러면서 우리 모두 민주를 외칩니다. 한쪽에선 권위주의가 아닌 그 모든 걸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성적소수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민주”를 하고 있다고 말하죠. 다른 한쪽에선 북한만 아니면 민주주의라 외칩니다. 그 때문에 체제 유지를 위한 폭력도 “자유민주” 수호라 외치죠. 1970년대로의 회귀를 울부짖는 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민주와 진보를 꿈꾸는 정부·여당의 행보는 안타깝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공정을 강조했습니다. 민주체제의 진보를 여는 공정이 되길 기대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