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

2017년 5월25일 영국 맨체스터의 한 광장에 시민들이 모였다. 어딘가 슬픈 표정을 한 이들은 사흘 전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장에서 일어난 테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1분간 침묵했다. 1분의 침묵이 끝나자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한 여성이 맨체스터 출신 록밴드 ‘오아시스’의 ‘화내며 뒤돌아보지 마세요’(Don’t look back in anger)를 조용히 읊조렸다.

그가 20초가량 노래를 부르자 몇몇이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따라불렀고, 1분쯤 지나자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처음 노래를 시작한 리디아 번스마이어 롤로는 지난 사흘간 머릿속에 떠올랐던 노래를 불렀을 뿐이라며, 사람들이 따라부르기 시작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맨체스터 시민들은 1년 뒤 1주기 추모 행사에서 다시 한번 다 같이 이 노래를 불렀다.

9년 전 12월에는 전국 곳곳에 대자보가 붙은 현상이 있었다. 철도 민영화 시도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탄압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대학생 주현우씨가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런 하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를 손으로 써서 캠퍼스에 붙였다. 다음날 누군가 응답하는 대자보를 써서 옆에 붙였다. “아뇨,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그리고 이튿날, 더 많은 대자보들이 첫 번째 대자보 주변에 붙었다. 심지어 다른 대학에서도 안녕하지 못하다고 응답하는 대자보들이 붙기 시작했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하나의 현상으로 거듭난 순간이다.

롤로의 노래와 주현우의 대자보는 물론 용기 있고 멋진 행동이다. 홀로 앞에 나서는 건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현상’이 된 것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 혼자 노래 부를 때 몇몇 사람이 함께 따라부르기 시작함으로써 노래는 하나의 메시지로 격상될 수 있었고, 누군가의 청자 없는 질문에 누군가 기꺼이 응답했기 때문에 대자보 릴레이는 하나의 형식이 될 수 있었다. 먼저 앞에 나서긴 어려워도, 응답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리고 그 응답이 현상을 만든다.

미국의 기업가 데렉 시버스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2010년 TED 강연에서 한 적이 있다. 해변가에 괴상한 춤을 추는 한 사람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이윽고 그의 춤을 따라 추는 사람이 나타났다. 곧 몇 사람이 더 나타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느새 대부분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고, 이제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른다. 시버스는 ‘이게 운동을 일으키는 방법’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모두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운동을 일으키려고 생각한다면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세요.”

‘응답들’은 언제 현상이 될까? 미국의 네트워크 연구자인 데이먼 센톨라는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책에서 수많은 변화 사례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25% 티핑포인트’ 이론을 제시하는데, 쉽게 말해 자신이 강한 유대감을 갖는 집단 내의 25%가 변화를 지지하게 됐을 때 사람들은 기꺼이 변화의 편에 설 용기를 갖더라는 얘기다. 우리는 종종 운동의 성패를 가늠할 때 기준치를 51%로 잡으면서 그 난도에 지레 겁먹어 물러나곤 하는데, 25%가 티핑포인트라는 이론은 운동의 난도를 크게 낮춘다.

그 시작에 ‘최초의 응답’이 있다. 나 같은 내향성 인간에게 이런 아이디어는 큰 위로가 된다. 성격상 앞장서서 뭔가를 창조해내고 이끌지는 못하지만, 앞장선 누군가의 행동을 응원하고 따르는 것쯤은 할 수 있다. 돌아보면 앞장선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따르는 사람이 충분치 못해서 미처 현상이 되지 못한 행동들이 있었을 뿐이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세상읽기] 세상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