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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지난해 이맘때 하늘나라로 떠난 단원고 아이들과 동갑내기인 딸이 하나 있다. 이맘때면 늘 학교운동장에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는다. 마치 봄의 인증이라도 되는 양 고3이 된 올해에도 어김이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친구들과 벚꽃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또래가 있다. 지난해 수학여행 가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단체사진조차 꺼내보기가 두렵다.

이제 이 아이들은 봄의 온기가 느껴지고 벚꽃냄새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면, 꼭 잡았던 손을 놓친 친구들에 대한 기억으로 매년 아파할 것이다. 세월호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얼마 전 안산온마음센터에서 유가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실태 조사를 발표했는데 결과는 충격적이다. 응답자 152명 중 77.6%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심리적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절반 이상(55.3%)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피폐한 상태인데도, 응답자 대부분(84.2%)이 아무런 심리적 도움을 받고 있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과 지금은 치료를 받을 시기도, 도움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신적 외상과 애도에서 벗어나 회복과 성장이 차지해야 할 마음의 자리에 여전히 깊은 울분과 죄책감, 그리고 불신과 절망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고 후 수개월간 안산에서 만난 희생자의 형제자매들 이야기는 더 마음을 쓰리게 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멘토였던 언니, 오빠를 잃고 위로받아야 할 그들에게 학교와 친구는 하루아침에 새롭게 적응해야 할 낯선 장소로 변한다. 즐겁게 웃다가도 자신의 눈치를 보는 친구들, 급식만 걸러도 걱정스럽게 되묻는 선생님들 때문에 감정을 더 깊이 숨겨야 한다.

때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곳에서 자신만 도려내진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돌아온 집에는 자신보다 더 아픈 부모가 있다. 나는 울면 안돼! 더 잘해야 하는 자식이잖아? 그런데 나는 왜 엄마와 아빠가 더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언니, 오빠 대신 이곳에 있는가 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꿈에서라도, 한번이라도 애타게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던 언니, 오빠가 드디어 꿈에서 나를 찾아왔다. 꿈결이라도 깨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한동안 나 자신도 상담을 하면서 그들만큼 절망하고 무기력했으며 돌아올 때면 운전대를 잡고 흐느껴 울고는 했다.

지난 3월13일 단원고 시청각실에서 1주기를 앞두고 세미나가 열렸다. 당시 강연을 한 광주트라우마센터의 강용주 센터장이 사진 한 장과 함께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01명의 희생자를 낸 1998년 독일 고속철 참사 현장 인근에 심어진 101그루의 묘목사진이었다. 전후 최악의 열차사고로 알려진 에세데 참사는 수년간의 사고조사, 긴 법정공방을 거쳐 사고발생 15년 만인 2013년에야 독일철도회사 대표의 공식사과를 받았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그들에게도 순탄치 않았지만 지금의 우리와 사뭇 다른 것은 독일국민들의 지지와 도움이 함께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고 직후 3년 동안 지속적인 심리치료를 받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함께 고속철에 올라 사고지역인 에세데 역까지 치유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과연 우리에게도 세월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함께 배를 타고 미처 끝내지 못한 수학여행을 다시 떠나는 그날이 올 수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 신현호씨가 세월호 사진전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 여행이 진정한 회복과 치유의 여행이 되려면 반드시 심리적 치유와 회복과정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피해자를 향한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와 진실규명 노력,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지지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상담했던 유가족 아이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잘 지내고 있다는 아이의 말에 안도하면서도 한편 걱정이 된다. 이 아이는 잘 지낸다고 말하는 것이 습관화된 것은 아닐까?


조인희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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