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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2015년 4월16일 진도 팽목항에는 그림타일 4656개로 구성된 195m 길이의 ‘세월호 기억의 벽’이 세워졌다. 기억의 벽을 이루는 타일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람의 마음들이 담겨 있다. 기억의 벽 타일을 그린 사람들은 유모차를 밀고 온 엄마,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유치원 꼬마,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온 학생들, 퇴근길에 찾아온 직장인들, 대학생들, 일부러 먼 길을 운전해온 택시기사, 국가의 무능함에 분노한 할아버지, 손자 같은 아이들의 참담한 죽음에 아파하던 할머니였다. 그들은 이 땅의 엄마들이고, 아버지들이며, 학생들이고,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이었다.

‘기억의 벽’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기억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에 아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 어린이책 작가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처음 시작한 활동의 명칭은 ‘천 개의 타일로 만드는 세월호, 기억의 벽’이었다. 2014년 11월15일 시작한 기억의 벽 작업은 전국 각지에서 요청을 받았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 속에 1000개를 훌쩍 넘어 4656여개의 그림타일이 그려졌다.

기억의 벽에는 어린이책 작가들이 소속된 한국작가회의, 어린이와문학, 어린이도서연구회와 세월호참사피해자가족협의회, 진도민주사회단체협의회, 그리고 진도 주민들의 추진과 후원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기억의 벽의 진정한 주최자와 후원자는 한겨울 추운 야외 천막 속에서도 타일을 그려준 이 땅의 시민들이다.

기억의 벽을 만든 이들은 2014년 4월16일, 우리의 아이들, 친구들, 이웃들을 잃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분노를 동시에 느낀 사람들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닥친 참사가 언제, 어느 순간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퍼했고, 아파했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아이의 일이었고, 내 가족의 일이었으며, 나 자신에게 생긴 일이었다.

팽목항 (출처 : 경향DB)


기억에 남는 모습들이 있다. 유족 중 한 분은 그림타일을 앞에 두고 두 시간 동안 하나의 선조차도 그리지 못했다.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한 할머니는 타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일주일 동안 연습했다는 종이를 꺼내 서툰 그림을 그렸다. 가장 추웠던 겨울날,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엄마에게 제대로 그려야 한다며 곱은 손을 불며 한 시간 넘게 그림을 그린 열 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가로 14㎝, 세로 11㎝ 크기의 작은 타일에 많은 마음들을 남겼다. 슬픔과 아픔, 분노와 위로, 안타까움과 그리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들이었다.

세월호 기억의 벽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추모의 벽이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무능과 우리 사회의 적폐를 마주 보게 하는 진실의 벽이다. 타일 내용 중 가장 많았던 문구는 이것이었다. ‘미안해요.’ ‘잊지 않을게.’ 팽목항에 세워지는 물리적 기억의 벽은 완공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세워야 할 기억의 벽 작업은 이제 시작이 아닐까 한다.


정란희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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