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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詩想과 세상

소금쟁이

opinionX 2022. 7. 25. 11:05
 

물의 거죽이 커터 칼날처럼 반짝인다

가라앉고 싶어도
가라앉을 수 없는 슬픔의 표면장력으로
한 발 한 발
물 위를 걷는다
물 위는
절망과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으려고 몸이 물보다 가벼워진 이가
홀로 걷기 좋은 곳.

임경묵(1970~)

개울이나 연못, 물웅덩이에는 여러 생물이 산다. 붕어는 물속에 살고, 개구리는 물 안팎을 자유로이 왕래하고, 소금쟁이는 물 위에 떠 있다.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존재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서로의 영역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져야 평화가 유지되고 대상도, 자리도 빛난다. 시인은 당연함을 당연함만으로 보지 않는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풍경과 마주한다. 시인은 물에 살면서도 물속에 들어갈 수 없는 소금쟁이에서 슬픔을 본다.

물 위의 소금쟁이에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문 앞에서 서성대는 이를 연상한다. 집 밖의 서성거림은 슬픔이나 불안에 그치지 않고 “절망과 두려움”으로 확장된다. 커터 칼날과 가라앉음이 상징하듯, 죽음을 떠올린다. “가라앉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소요하며 나를 돌아본다. 몸보다 마음이 “가벼워진 이”는 삶에 잔물결이나 소용돌이가 일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독하고 비장한 ‘시인의 길’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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