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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詩想과 세상

시니컬

opinionX 2022. 7. 18. 10:33
 

당신의 포옹은 어색해
그 안부는 등받이 없는 의자 같아서
안온함이 지속되진 않는다
아무나 표절해도 되는 꽃말은
꽃을 선물해놓고 얼버무리는 핑계 같은 것
애인 앞에서의 눈물도
깨진 사랑을 수리해주는 천사의 접착제일 뿐
천 개의 퍼즐을 맞추는 일보다
그림 하나를 천 개로 나눈 사람이 대단해
운동화 끝이 자주 풀리는 것은
묶느라 구부리는 사이
내 안에 고인 것들이 흘러나가게 하라는
어린 귀신의 배려겠지
내일 당장의 일이면 불면으로 경고하는데
먼먼 일이라면 타인의 것인 양 잊어버리게 하는
신은 근시임에 틀림없어
내게 없다는 그 철학은
어른과 아이의 생각 차이를 화해시키는 일

전영관(1961~)

어려운 시를 읽다 보면 그림 퍼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어와 문장, 행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숨겨놓고, 그것도 모자라 뒤죽박죽 순서를 바꿔놓고는 ‘내가 말하고 싶은 의미가 무언지 찾아보라’ 한다. 그러고는 뒤로 슬쩍 물러나 시니컬하게 바라본다. 각기 제자리가 있지만 “천 개로 나눈” 그림 퍼즐은 쉽게 맞출 수 없다. 처음엔 난감하고 막막하지만 모서리에서 가운데로, 같은 색상끼리 퍼즐 조각을 맞추다 보면 서서히 그림의 윤곽이 드러난다.

시인이 풀어헤친 그림에는 당신과의 어색한 포옹과 편안한 의자가 돼주지 못한 자책과 살면서 위태로웠던 순간과 아이를 낳아 기르며 겪은 애환이 들어 있다. 그런 일들은 당장 해결할 수 없으므로 타인의 일인 양 잊고 살아야 한다. 아이가 신발 끈을 처음 묶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지만, 어른이 돼서도 “운동화 끈이 자주 풀리는” 건 몸과 마음 상태가 아이 같다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 그 차이를 좁혀주는 삶의 퍼즐 조각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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