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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40대 여성 A씨가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소박하고 성실히 살아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과 자신의 퇴직금을 은행에 맡기자니 이자가 너무 적다. A씨는 여윳돈을 어떻게 굴릴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고수익’ 투자 기회를 발견했다. 신도시 등 부동산 개발에 투자하는 펀드였다. 잘만 되면 매일 비지땀 흘리는 남편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릴 것이라며 장밋빛 재테크의 꿈에 가슴이 부풀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 것이라 의구심도 일었다. 하지만 현장 답사도 해보았고 관련자들도 박학다식·성실해 보여 안심했다. 특히, 유명인까지 나온 케이블TV에서 관련 내용이 소개되는 걸 본 뒤 확신이 갔다. 이래저래 총 3억원 정도 투자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투자 회사 대표가 사기죄로 구속되는 뉴스를 보게 된다. TV 화면에 ‘재테크 다단계 사기’라는 자막이 뒤통수를 때린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삶을 모두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어느 60대 남성 B씨가 있다. ‘부동산 투자’에 관한 책을 쓰기도 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영농법인을 설립한다. 한편으로 기계농, 기업농, 화학농으로 수익성 높은 농업경영을 하기 위해, 다른 편으로는 농가주택이나 전원주택 등 농어촌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기 위해서다. 전반적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국 곳곳에 혁신 도시들이 건설되면서 부동산 개발 수요는 꽤 크다. 특히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에 싫증을 느낀 중산층 이상의 부자들을 상대로 숲속에 꿈같은 전원주택 단지를 건설하면 그야말로 고수익이 실현될 것이다. 그래서 B씨는 구글 지도 검색을 통해 누군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소유해온 경관 좋은 산지들을 귀신처럼 찾아낸다. 그러고는 잘 아는 설계사무소에서 땅주인도 모르게 전원주택단지 개발 디자인을 한다. 원래 보전녹지 지역은 환경과 임야 보전을 위한 개발 규제가 있다. 그 용도가 단독주택이나 학교, 종교시설 등 특수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규모는 최대 5000평방미터까지, 산지 경사도는 17.5도 이하여야 한다. 진입로도 6미터 폭의 도로가 있어야 하며, 법정도로로부터 표고도 50미터 이내여야 한다. 현실적 조건상 개발 자체는 어렵게 생겼다. 그러나 별걱정을 않는다. 개발행위 허가 담당 공무원들과 좋은 관계만 맺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프로젝트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부정부패, 농지·산림훼손과 생태계 파괴, 선주민과 투자자에 대한 바가지를 대가로 치를 것이다.

어느 50대 변호사 C씨 이야기도 있다. 굵직굵직한 사건을 맡아 승소하게 만들어 주는 대가로 건당 수억 내지 수십억원을 챙긴다. 물론 법의 논리를 적절히 따르는 듯하지만, ‘전관예우’라는 비논리를 활용하거나 사건 담당 판사와 대학 ‘선후배’라는 관계를 오·남용한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패소하는 사람을 무수히 만들어내는 대가로 C씨는 호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급속히 재산을 늘려나간다. 심지어 누군가에 의해 고발을 당해도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간다.

이런 식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인 것은 인간성이 살아 있어서고, 자연이 자연인 것은 야생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성과 야생성은 돈 또는 탐욕 앞에서 무참히 말살된다. 이렇게 사람이 돈의 논리로 무장한 것이 속물주의다. 속물은 모든 걸 돈으로 본다. 관직도 돈이고 시간도 돈이다. 밥상을 살리는 땅도 평당 얼마로 환원되는 부동산일 뿐이며, 사랑의 보금자리인 집도 고수익을 남기는 투자 대상일 뿐이다. 속물주의는 ‘경자유전’ 원칙을 규정한 헌법 정신마저 부순다. 속물들은 사람들에게 땅에 투자하면 속지 않는다는 뜻으로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속물들은 공직자 청문회에 나와 ‘땅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골에 농지를 사놓았다고 뻔뻔스레 말한다.

과연 우리는 속물주의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속물주의는 마음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자본이 만든 제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속물주의에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기보다 당당함을 느끼는 것도 이미 자본(돈벌이 논리)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연인 본성을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새 세상을 열려면 속물주의와 부단히 투쟁해야 한다. 소중한 내 삶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서다. 속물들이여, 부디 지구를 떠나길!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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