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반 칼럼/이렇게

손에 손잡고

opinionX 2021. 6. 22. 09:33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 기획 전시 ‘호모 사피엔스’를 보기 위해 대기하는 공간은 하얗다. 하얀 공간에서 우리는 ‘지금’을 걷어내고 수백만년 전 세계와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우리 손에 들려 있는 도록이 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전시장에는 수염 난 고인류 남성이 사냥감을 어깨에 메고 풍만한 가슴의 고인류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장면은 없다. 우리가 상상한 모습 대신 고인류가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다. 그리고 만져본다.

고인류 화석 중 가장 유명한 ‘루시’는 두 발 걷기를 했지만 작은 머리와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인류는 머리가 커지기 전에, 몸집이 커지기 전에, 두 발 걷기부터 시작해 인류다워졌다는 이야기는 모두 다 아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루시의 머리뼈 옆에 손바닥을 대보면 얼마나 작은지 놀란다. 루시 옆에 서보면 얼마나 작은지 놀란다.

호모 에렉투스인 ‘나리오코토미 소년’은 갓 11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지만 훤칠하게 커진 몸과 제법 커진 머리통을 가지고 있다.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집은 전시실 반대편에 있는 네안데르탈인 ‘라페라시’의 몸집과 다르다. 라페라시의 다부지고 튼튼한 몸집은 우리 머리보다도 큰 머리를 받치고 있다. 얼굴을 본다. 네안데르탈인이 큰 코로 추위를 견뎌냈다면 두꺼운 눈썹뼈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루시와 나리오코토미 소년과 라페라시는 전시실에 들어찬 수많은 고인류와 함께 앞을 보고 있다. 이들은 일렬종대로 줄 맞추어 서 있지 않다. 전시실 곳곳을 채운 조상들은 수백만년 동안 다양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어두운 동굴에서 동굴 바깥의 세상을 상상했다. 안료를 개어 삶에 소중한 동물들을 벽에 그렸다. 죽음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면서 땅을 파고 죽은 이를 묻어주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상상력을 가진 고인류의 자손이 바로 우리다.

석기를 만들고 매머드 벽화를 그리고 죽은 이를 묻은 손은, 수백점 석기를 벽에 붙이고 대전에 있는 매머드의 수백개 뼈를 3D 프린팅하여 전시실에 세운 손으로, 고인류의 머리뼈를 만지는 손을 잡는다.

이상희 미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 인류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