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담배가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술이 발암물질이냐고 물으면 설마하는 표정을 짓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술은 발암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술(알코올)과 그 부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1급이라는 것은 인체에서 발암이 확인됐다는 것을 말한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술도 많이 마실수록 암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술을 하루에 50g 이상 마실 경우 암 발생의 위험이 2~3배 더 늘어난다. 더구나 담배를 같이 피면 그 위험은 가중된다.

우리 사회에는 포도주를 비롯해 술은 약간 마시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생각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대단히 오해가 많고 과장된 정보이다. 담배는 한 개비라도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적정 흡연이라는 개념이 없고 무조건 담배를 끊도록 권한다. 그런데 술은 한 모금도 안 하는 사람에 비해 약간의 음주를 하는 사람의 건강이 더 좋기 때문에 약간의 음주는 건강에 좋다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음주도 그 ‘약간’을 넘으면 마실수록 건강을 해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럼 어느 정도 술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가? 문제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적정 음주량이 우리나라 국민들이 아는 것에 비해 엄청나게 적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에서는 암예방 수칙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 마시도록 권고하고 있다. 즉 소주는 소주잔으로, 맥주는 맥주잔으로, 포도주는 포도주잔으로 두 잔 이내를 마시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를 초과하면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음주가 더 위험하다는 근거에 입각해 세계암연구기금에서는 남성은 하루 두 잔, 여성은 하루 한 잔 이하를 권하고 있으니 여성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

또 다른 주제는 술에 따라 어떤 종류의 술은 건강에 더 유익하거나 최소한 덜 해로운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마시는 술은 맥주, 소주, 막걸리, 양주, 포도주 등 종류가 다양하고, 술의 종류에 따라 알코올 함량이 다를 뿐만 아니라 술에 들어 있는 성분 역시 다르다.

한때 포도주 시음회가 만들어지고, 마치 포도주에 대해 모르면 교양인이 아닌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었다. 붉은 포도주의 경우 탄닌을 비롯한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다고 알려졌지만, 발암물질인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히드를 섞어 마신다면 건강에 이로울 리 없다. 최근 막걸리 붐이 일고, 막걸리에서 항암물질이 발견됐다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막걸리가 건강에 좋은 술로 비치고 있지만 이것 역시 많이 마시면 득보다 실이 크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술은 여러 급성 및 만성 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담배와 더불어 인류 건강에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다. 또 음주운전이나 음주와 관련된 폭력 행위, 알코올중독이나 알코올 의존성 등의 정신·사회적 문제는 헤아리기 어렵다. 더구나 임신부의 음주는 저체중아 및 태아의 선천성 기형이나 신경학적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1970~1980년대에는 대학생이 되면 으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대학생이라도 자기 자녀가 담배 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는 없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술을 한 사발씩 마시는 것이 관례였고, 그게 자랑스러운 전통처럼 여겨졌다. 가끔 신입생 환영회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이 보도되곤 했는데, 이제 그런 몹쓸 전통은 사라질 때가 됐다.

가수 아이유의 소주 광고 (출처 : 경향DB)


담배 인심이라는 말이 지금은 사라졌듯이 이제 술인심이라는 말도 사라질 때가 됐다. 아무리 좋은 술친구라 하더라도 마주 앉아 두 잔의 술을 마셨다면, 술을 더 권하는 것은 발암물질을 권하는 것과 같다.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건강에 좋은 것을 찾아나서기보다는 건강에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절주는 금연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음주는 하루 두 잔 이내로 해야 한다.


서홍관 | 국립암센터 교수·시인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영동 대공분실의 ‘흰 대문’  (0) 2015.05.25
정신노동의 위기  (0) 2015.05.22
사과의 딜레마  (0) 2015.05.18
역사의 반복  (0) 2015.05.15
정치에서 ‘합의’가 소중한 이유  (0) 2015.05.12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