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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세상읽기

사과의 딜레마

opinionX 2015. 5. 18. 21:00

제대로 된 사과를 보기가 힘들다. 전쟁, 국가폭력과 같은 범죄에 대한 국가와 국정 최고책임자의 사과에서부터 뇌물수수와 같은 정치인들의 사과, ‘갑질’한 기업인, 혐오 발언한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뻔히 고통을 당한 당사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제쳐놓고 ‘국민’이나 ‘시청자’에게 사과한다. 아니 ‘사과’ 대신 ‘유감’이라고 말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과는 자신이 가한 행위의 ‘의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다. 자신의 의도가 선한 것이었건, 악한 것이었건 그것이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고통을 가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사과다. 따라서 사과에 선행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왜 상대방에게 ‘본의와 달리’ 고통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사과가 그저 한번의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맹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실상 사과는 거의 불가능하다. 잘못한 이가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고통을 줬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 가해자는 이미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면서도 고통을 줬다. 그것이 뻔히 고통인 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과는 들켰기 때문에 하는 사과다. 들키지 않았더라면 결코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가 그가 고통을 가한 것에 대해 모르는 경우에도 사과는 불가능해진다.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본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 말은 대부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한번도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에 그것이 고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본의’가 아니지만 어쨌든 피해자가 고통을 느꼈다고 하니 사과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경우도 제대로 된 사과가 될 수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과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어느 경우라도 고통에 대한 이해가 없다. 아무리 ‘진정한’ 사과라고 하더라도 사과한다고 고통이 그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고통은 지속된다. 그렇기에 상황을 끝내려고만 하는 것은 고통을 가한 자의 입장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받을 것을 종용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자신의 사과가 얼마나 진정한 사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피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찾아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1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강기훈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들이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무죄'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것이 사과가 처한 근본적인 딜레마다. 알고 있었다면 애초부터 고통을 가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과할 수가 없다.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과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사과를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사과를 ‘받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피해자에게 떠넘길 공은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인에서부터 연예인, 아니 보통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사과하고 한순간에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 세 가지다. 하나는 고통을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 둘째, 자신은 그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 셋째,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시간을 들여’ 알아야만 한다는 것 말이다. 고통이 순간이 아니기에 사과도 순간이 될 수 없다. 사과는 일회용 휴지처럼 한번 사용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과는 시간을 들여 반복·지속돼야 하는 행위다. 우리는 잊고 묻으려고만 하는 ‘사과’에 저항해야 한다.


엄기호 | 문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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