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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는 나이는 몇 살부터일까. 어린이의 말에 우호적인 가정에서조차 아이의 의견은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간식 종류 같은 가벼운 선택에서는 어린이를 한껏 존중하지만 집 안의 가구를 옮기는 일 정도만 되어도 어린이의 발언은 빠르게 배제된다. 대화가 중요하다며 협의를 청하는 순간에도 결론은 대개 내려져 있다. 그럴수록 어린이는 떼쓰기로 대응한다. 이때 “너는 네 생각만 하는구나” 같은 비난을 들으면 스스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던 어린이는 위축된다. 어른의 입장에 공감하고 반성할 것을 요구받는다. 시민의 제1조건은 생각과 의견을 갖는 것이다. 어린이가 사회의 갈등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과 연관된 문제에서조차 겉치레로만 존중받는다면 그는 언제쯤 진짜 시민이 되어볼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독립적으로 인정받으며 현실을 바꾸어보는 경험은 소중하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된다. 규제와 훈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실행과 거절의 권리를 손에 들어야 시민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

만 15세인 페넬로페 레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젊은 유니세프 대사로 어린이 기후패널을 이끌고 유엔 기후회담에 참여한다. 여덟 살부터 기후 문제에 대해 발언해왔으며 열한 살 때는 어린이 환경단체인 에코 에이전트의 이사로도 일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어린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내 친구와 이웃, 다음 세대가 살아갈 기회를 위해서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유니세프 노르웨이의 카밀라 비켄 사무총장은 페넬로페 레아야말로 현재 가장 분명하고 강한 목소리를 지닌 기후변화 활동가라고 평했다. 2019년 예테보리도서전에서 해양 폐기물을 다룬 그림책 <플라스틱 섬>에 대한 북토크가 열렸는데 그날 온 50대 노르웨이 여성은 존경하는 환경운동가에게 이 책을 선물하겠다며 이명애 작가로부터 사인을 받아갔다. 그 존경의 대상이 바로 페넬로페 레아다.

위의 사례를 읽고 우리 현실과 온도차가 크다고 느낀다면 아마도 거기에는 나이서열주의가 있을 것이다. 아동과 청소년이 정치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면 어른들은 나이도 어린데 대견하다고 시혜적 칭찬을 내놓거나, 나이도 어린데 뭘 아느냐고 비웃는다. 두 반응에는 모두 그들을 한 사람의 동료 시민으로 여기지 않는 차별적 태도가 있다. 어린이는 잘 자라서 어른을 기쁘게 하려고 예비적으로 존재하는 인력이 아니라 나름대로 오늘을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시민의 활동에 나이가 제약이 될 수는 없다. 아동,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2011년 데뷔해 유튜브에서 4억4000만 조회수를 기록한 멕시코의 청소년밴드 바스케스사운드(V-sounds)는 이주 아동이 당하는 차별과 청소년들이 겪는 폭력을 막기 위해서 정치활동을 병행 중이다. 2006년생인 페루의 프란체스카 아론손은 10대 소녀들이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정치, 지역사회, 학교 운영에서 청소년의 참여권 확대를 촉구하며 분투했고 그 덕분에 4·15 총선부터는 만 18세도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유권자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게 되면서 다가올 변화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동안 아동과 청소년의 생각과 목소리를 귀여움이나 귀찮음으로만 받아들였던 자신의 편견에 찬 모습을 더 염려해야 한다. 몇 살이냐고 나이를 묻기 전에 그 동료 시민의 생각을 정중히 청해듣는 태도가 먼저다.

<김지은 |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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