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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화가다. 지금은 사라진 신문 소설 삽화로 2002년에 데뷔했다. 인터넷 만화도 그 무렵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이른 시도였다. 그런데 정작 웹툰은 많이 그리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그냥 내가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트렌드에서 동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비슷한 문제로 마음 졸이는 친구들과 요즘 하는 이야기가 말과 자동차의 비유다.

옛날에는 많은 사람이 말이나 마차를 탔다. 그런데 이제 대부분의 사람은 마차 대신 자동차를 탄다. 말과 자동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짐작하기 쉽다. 종이만화가 말이라면 웹툰은 자동차다. 음반 대 음원 다운로드, 종이책 대 팟캐스트, 종이신문 대 온라인 매체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들었다. 유튜브, 즉 지금의 자동차조차 옛날 물건으로 보이게 만드는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이미 열렸다고도 한다. 

나는 뒤늦게 웹툰으로 갈아타는 문제를 고민하는데, 남들은 벌써 웹툰 시대 이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변화가 참 빠르다.

세 가지 생각을 한다. 첫째, 콘텐츠 향유자의 입장은 간단하다. 타는 쪽에서 보면 자동차가 낫다. 빠르고 쾌적하고 돈도 덜 든다(말똥도 없다). 둘째, 창작자의 입장은 복잡하다. 마차 만들던 사람이 자기 먹고살기 힘들다고 남들한테 자동차 타지 말라고 하면, 호응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인생을 마차에 올인할까, 자동차 공장에 일자리를 알아볼까.

나 같은 말발굽 기술자는 자동차 시대를 맞아 생각할 것이 많다. 자동차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거나 반대로 마차가 이미 사라진 시대라면, 이야기는 쉽다. 고민할 필요 없이 한쪽을 택하면 된다. 지금 같은 과도기가 문제다. 수익과 지출이며 일하는 보람이며 작가 브랜드며 여러 가지를 고려해봤다. 내 경우만 놓고 보면, 종이만화로 얻던 이득과 웹툰으로 얻을 이득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매체를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 아프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오늘날 말안장 가격은 옛날보다 비싸다고 한다. “뉴욕에서 말발굽 네 개의 가격은 자동차 바퀴 네 개의 가격과 동일하다. 말발굽은 4~5주밖에 사용할 수 없는데 말이다.” 경쟁자가 없으니 되레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는 말씀. ‘포지셔닝’이라는 마케팅 이론으로 유명한 알 리스의 글이다. 말과 자동차 이야기를 보면서 셋째, 버티고 버텨 최후의 말발굽 기술자가 되면 어떨까도 상상해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위한 전략은 아닐 것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없을까.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김태권 |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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