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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다른 나라에 일하러 간 아버지와 국제전화를 나눌 일이 아주 가끔 있었다. 긴요한 연락은 어른의 몫이었지만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내게도 귀한 전화의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그 시간을 먹먹한 메아리로 기억한다. 말을 하면 전송시간 차이 때문에 한참 뒤에야 아버지의 대답과 뒤섞인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함께 울렸다. 몇 초만 흘러도 요금이 무섭게 올라갔고 연결 상태가 나쁜 날은 “여보세요?”만 되풀이하다가 끊어져버리기도 해서 “잘 있니?” “건강하지?” “그럼요” 정도의 소식만 전해도 성공이었다. 하루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 잊어버리는 바람에 “네”만 하고 끊은 적도 있다. 그렇더라도 머나먼 나라에서 날아온 음성을 듣는 건 뭉클한 일이었다. 서로 거기는 무사할까 근심을 달고 살았다. 그 무렵 많은 해외 파견 노동자의 가족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장시간 격리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비싼 전화보다는 편지가 안부의 수단이었다. 거실 서랍에는 하늘색 항공우편용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쓰고 접어서 모서리에 풀칠을 하면 봉투처럼 마감이 됐다. 한 장의 종이에 글씨의 무게만 더해지는 이 가벼운 연락수단은 비교적 경제적이고 신속했다. 동생과 땀이 찬 손으로 연필을 쥐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던 장면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걱정하지 않도록 좋은 얘기만 써야 할 것 같아서 신나는 일화를 생각하려 애썼는데 조금 자란 뒤에는 그렇게 쓰는 말들이 거짓 같아서 슬슬 손을 놓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변함없이 이국의 우표가 붙은 엽서를 보내왔고 그 엽서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엽서를 받은 날만큼은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 같았고 따뜻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봉쇄와 격리가 일상화되어 우편물조차 원활하지 않다. 대신 디지털 미디어가 우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며칠 전 각각 집에서 온라인에 접속해 슈만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의 2중주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감상했다. 코로나19로 격리된 두 사람은 732㎞ 떨어져 있었지만 베를린과 잘츠부르크의 거리는 무난하게 극복되었다. 작가 제시카 러브가 집에만 갇혀 있는 어린이 독자를 위해 휴대폰으로 그림책 <인어를 믿나요?>를 읽어주던 날에는 태평양 건너 사는 번역자인 나도 낭독을 즐겼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의 상황 속에 세계는 디지털의 힘을 빌려서 소통의 거리 줄이기를 다양하게 실험 중이다. 강의를 위해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끊김을 겪다가 상대와 말이 겹치고 메아리가 울리던 수십년 전의 열악한 국제전화 환경이 떠올랐다. 물론 파일의 양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강의실의 온기가 있지만 2020년의 세계 시민들은 디지털적인 따뜻함(digital warmth)에 기대어 초유의 시기를 견뎌 나가는 중이다.

디지털 세계에는 끔찍한 어둠도 많다.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던 우리 사회의 성착취 문화가 환경을 옮겨 활개 치는 것일 뿐 미디어 때문에 이 일이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범죄 자체가 문제이며 그 어둠의 실체를 단호히 찾아 척결하고 끝까지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환한 기억과 경험을 이 공간으로 더 많이 불러와야 한다. 편지 쓰기, 노래하기, 책 읽기와 같은 고전적인 활동은 어쩌면 격리된 시간에 더 잘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가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떨어져 있지만 불의와 싸우고 연대할 수도 있다. 

누구와도 만나기 힘든 고립의 시간들을 이겨내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함께할 수 있는 밝은 일들이 당신과 가까운 어딘가 있다.

<김지은 |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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