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친하게 지내는 S 작가님이 3월에 한 달 동안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그의 설레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지난가을이니까, 코로나19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때였다. 얼마 전 그에게 여행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묻자 그는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라면서, 여행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도 수는 적지만 확진자들이 있고 공항을 오가는 동안 잠복기에 있는 누군가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도 동양인으로서 받을 차별이 두렵다고 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동양인이 운영하는 초밥집에 낙서테러가 일어났다고 하고,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욕설과 조롱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프랑스의 숙소에서 예약 취소를 통보해 올 것 같다고도 하는 그는, 더 이상 가을의 설레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진원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중국에 우한이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 작가님도 바이러스와는 무관한 한국인인데 왜 그러한 물리적 혐오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억울하고 슬퍼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를 넘어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나면 코로나19는 결국 ‘동양에서 온 바이러스’ 정도로 인식될 것이다. 코로나19 대신 메르스가 한창이던 때의 나는 낙타라든가 아랍이라든가 이슬람이라든가 하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동물원 바깥에서 낙타를 본 일이 없고 개인적으로 아랍인을 만난 일도 없지만, 그러한 인상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즘의 나는 외출할 때면 꼭 마스크를 챙긴다. 누구나 그렇듯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버스 옆자리에 이국적으로 생긴 아시아인이 앉았을 때부터 나는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그가 몇 번의 기침을 하자 버스에서 내려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은 ‘타인을 혐오해서는 안된다’라는 삶의 기본적인 태도마저도 완전히 무너뜨렸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스스로 부끄러우면서도 마스크를 하고 나오길 잘했다는 그런 양가적인 심정이 되고 말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에 대한, 어쩌면 정말로 운이 없었을 그들에 대한 혐오도 이미 일상이 되었다. 어느 확진자가 검사를 거부하며 의료진에게 폭언을 했다는 거짓 루머가 급속히 퍼지기도 하고, 그의 동선을 보면서 아픈 사람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고 분노한다. 나도 그에 따라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니, 나도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모든 시간 내가 떳떳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사적인 일상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철저한 자가격리로 타의 모범이 된 개인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훌륭하게 해낼 자신이 별로 없다. 

이러한 시국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아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단순히 몸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히 알고 있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KF 몇 이상의 마스크를 챙기세요, 손은 어떻게 씻으세요, 재채기는 옷소매로 입을 가리고 어떻게 하세요, 하고 말해 준다. 그러나 마음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일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갈 것이다. 나는 의료산업 종사자인 나의 처남을 무척 신뢰하는데, 그가 얼마 전 나에게 참 착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해요.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써야 해요. 내가 면역력이 있어서 이걸 이겨낼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잖아요.” 그때부터 나도 마스크를 더 챙겨서 쓰기 시작했다. 이처럼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는 평범한 삶의 태도로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일상을 함께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다. S도 프랑스에 별 탈 없이 잘 다녀오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