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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근 | 건국대 교수·경제학



 

20년 넘게 진행된 양극화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공동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됐다.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중산층 복원 등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배경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제를 푸는 일은 일자리 만들기에 있고, 일자리 만들기의 중심에 중소기업이 있다. 이처럼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최근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재벌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지지받기 어렵다. 재벌기업의 이미지가 시장경제의 핵심인 공정경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을 비롯해 일부 이해관계집단이 법적 대응을 운운하는 것도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경제는 사회의 한 부분이다. 주요 국가들이 경제논리를 넘어 공동체 유지 차원에서 소기업을 보호하는 이유다. 지역 공동체의 유지와 그 속의 주민들의 삶은 단순한 경제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경제적 가치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사이비 시장주의자’들만 모른다. 심지어 국가기구인 공정위조차 동반위의 결정을 경쟁 기능의 제한으로 못마땅해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영업의 공급과잉 구조와 과당경쟁 문제를 외면한 ‘제 밥그릇 챙기기’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특히 상품에만 경쟁원리가 적용되는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업의 경우 사람이 직접 제공하고, 특정 지역에 제한되기에 경쟁의 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 주요국이 서비스 시장을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이유도 상품에 대한 단순한 개방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개방일 뿐만 아니라 관습과 제도와 문화 등의 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점포를 지키고 있는 영세상인의 뒷모습. (경향신문DB)


우리 사회의 재벌기업이나 ‘사이비 시장주의자’들의 과잉 시장논리는 공동체의 장기적 지속에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 경제권력에 예속된 사회일수록 시장이 민주적 통제를 받는 사회보다 시장개방에 따른 양극화가 심하다. 이런 사회에서 시장은 공동체보다 상위개념이자 우상의 영역이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소기업 보호만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너진 골목의 빵집과 식당들이 업종지정으로 금방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 즉 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도 필요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다른 한편 구조적 문제를 방치한 채 규제에 의한 보호는 경쟁력을 위축시키고 영세 자영업자의 양산을 악화시킬 것이다. 보호와 더불어 자영업자의 양산 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1990년대 이후 무분별한 시장개방과 탈공업화 등에 따른 중소기업의 몰락, 제조업 및 대기업의 고용창출력 약화, 일자리 단기화 등이 영세 자영업자의 양산을 구조화했다. 따라서 일자리 만들기 패러다임을 기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 집약적인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투자 지원으로 금융시스템을 개선하고, 기존의 산업단지에 비유할 수 있는 공공 테크숍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넘칠 수 있도록 교육혁명과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정형화된 숙련노동을 기술이 대체하고 제조업의 생산성 증대로 ‘제조업의 농업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산업화 시대의 표준화된 지식보유자 양성 방식이나 특정 산업 만들기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노동력이나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대다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를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 등에 대한 억압이 지나치고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는 후진 나라라고 생각하는 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도전과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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