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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쌀이 주는 의미와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주식임은 물론 전체 농가의 60%나 되는 농가들의 중심 소득원이다. 이런 쌀이 올해는 재고량이 연간 소비량의 절반에 이르는 200만t까지 치솟으면서 시장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하는 적정 재고수준의 3배 가까운 엄청난 양이 창고에 가득 쌓여있는 것이다. 심각한 수급 불균형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원인을 연속된 풍작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이것이 근본 원인은 아니다.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 문제가 쌀 산업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도입된 현행 쌀 직불제는 목표가격과 연계된 변동직불 부분으로 인해 강한 가격지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소비가 오래전부터 장기적 감소추세로 접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산이 기대만큼 잘 줄지 않았던 원인도 이 같은 제도적 특성 때문이다. 여기에 매년 41만t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쌀이 이른바 최소시장접근 명목으로 수입되고 있다. 관세화를 20년간 유예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생산이 쉽게 줄지 않는 구조인 데다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41만t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쌀가격이 하락할 때마다 정부는 거의 매년 근본 처방은 없이 시장격리 방식으로만 대처해 왔다. 결국 현 사태는 그동안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수급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초래된 필연적 결과이다.

지난달 20일 전북 익산시 남전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트랙터로 수확을 앞둔 벼를 짓이기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농민들은 “정부의 쌀 수입 정책으로 쌀값이 폭락했다”면서 정부가 쌀값 보장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핵심은 수급균형구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런데 동시에 농가소득은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수급균형구조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손쉬운 방법은 시장격리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식은 일시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는 진통제일 뿐 시장에는 생산을 자극하는 나쁜 시그널을 주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매년 똑같은 방법으로 시장격리를 해왔어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더구나 직불제가 가동되는 한 이로 인한 추가적인 농가소득 향상효과는 미미하면서 재정부담만 가중되는 한계도 있다.

우선은 과잉 재고를 적정수준까지 줄일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사료 및 가공용 쌀 확대, 수출 및 해외원조, 대북지원, 음식점과 기업의 국산 쌀 사용 유도 등 다양한 수요진작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생산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현행 직불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고정직불 단가(100만원/㏊)를 적정 소득보장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고 변동직불은 폐지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변동직불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직불제 대상면적을 축소하면서 목표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액 지원율(85%)을 영농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중·소농과 대농 간 지원율 차이를 둠으로써 과잉생산의 주원인인 대농의 생산억제 효과를 기하고, 농업 내의 양극화 문제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풍작같이 기상조건에 기인한 단기적인 가격폭락에 대해서는 수급구조 문제와는 다른 가격안정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농업진흥지역 추가 해제안은 재고되어야 한다. 우리는 쌀이 남는 것이지 농지가 남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국민 1인당 경지면적 역시 0.03㏊로 최하위 수준이다. 5000만 국민의 식량안보나 통일 후까지 대비해야 한다면 우량 농지는 늘어나야 한다.

쌀 문제에 관한 한 오랜 기간 많은 논쟁과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똑같은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주 시장격리를 골격으로 한 수급안정대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일단 소나기를 피해보자는 단편적 미봉책이라는 데서 예년과 차이가 없다. 정부의 혁신적인 조치를 기대한다.

이용기 | 영남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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