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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시론]한반도 강호무림기

opinionX 2017. 4. 26. 10:53

무협소설이라곤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지만 한 편 써볼까 한다. 한반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림고수들과 다양한 문파들의 암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랜 기간 맹주를 자임해 온 워싱턴파의 ‘장문’(우두머리) 자리를 예상치 못한 인물이 꿰차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예측불가한 인물로 알려진 워싱턴파 새 장문은 처음 등장하자마자 내부적으로 불안한 자신의 자리 굳히기에 급급하다. 밖으로는 모호한 말들만 던지다가 드디어 지금까지 관리해온 외부구역을 장악하기 위한 조치들을 하나씩 해나간다. 이에 맞선 무림고수들과의 갈등과 한판 대결로 한반도라는 이름의 강호무림은 긴장감이 높아진다.

워싱턴파 새 장문은 먼저 맹주자리를 위협하는 베이징파 장문을 자기 집에 불러 북핵이니 사드니 다른 군소문파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없이 북핵문제를 담보로 자기들 살 궁리만 하고 헤어진다. 여기에 열받은, 만만치 않게 예측불허인 평양파 젊은 장문은 워싱턴파에 자신들과 먼저 일합을 겨루자고 호기를 부린다. 평양파는 핵 신공을 습득하고 기어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신공을 연마하기에 이른다. 다른 시급한 문제 해결이 우선인 워싱턴파 장문은 평양파가 조용히 순서를 기다려 주기를 바라건만 순순히 따를 평양파가 아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한판 할 것을 대비해 온갖 미사일 신공까지 재연마하며 무공을 자랑하고 있다.

평양파와의 대결에 내보낼 문하제자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겁 없이 날뛰는 평양파의 모습을 지켜보는 워싱턴파 장문은 자신의 능력과 인내력을 시험받는 것에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다. 결국 이제껏 전임 장문들이 깊숙이 넣어둔 ‘선제타격’ 비첩까지 꺼내 흔들고, 칼빈슨을 다시 보낸다고 협박까지 하는 ‘항공모함 전개 사전공개’ 신공까지 보인다. 이마저도 부족했는지 평양파를 감싸고도는 베이징파까지 환율조작 등 경제로 협박하여 평양파의 신공 수련을 방해한다. 베이징파는 워싱턴파의 선제타격을 묵인하는 듯한 말을 환구시보에 던지는 ‘보여주기’ 신공으로 워싱턴파에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 도쿄파는 미국파에 붙어 미국파 당주(문파 딸린 일개 부서의 장)를 자임하며, 그간 구속받았던 무공 연마 금지에서 벗어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문파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며 이익을 챙기는 ‘윈윈 게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반도의 주인인 서울파는 장문도 없고 상황판단도 못해 공포에 떨기만 하고 있다. 비어 있는 서울파 장문 자리를 노리는 이들은 지금의 위기감을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소설은 여기까지 쓰인 상태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인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과 발사대를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AP연합뉴스

서울은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근거 없는 괴담이 사실과 이성적 판단을 지배하고 있다. 책임져야 할 국방부는 한반도 위기설을 제공한 칼빈슨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언제 오는지도 말하지 못한다. 의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위기설을 방치하고, 대선판을 흔들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방부가 침묵이니 달랑 미국발 상업위성 사진 몇 장을 가지고 2개월 동안 북한의 핵실험에 가슴 졸여야 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이 떠들던 김일성 생일(4월15일)을 지나 북한군 창설일(4월25일)도 지났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이제 북한이 군사적 압박에 굴복해 핵실험을 유보했다는 자화자찬까지 나온다. 과연 북한이 그럴까?

핵실험은 애당초 계획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북한에 미국을 압박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핵실험이 아니라 운송수단인 미사일 개발이다. 이제 핵실험을 한다면 기술적 필요보다 정치적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압박에 굴복하는 북한이라고 자극하는 것은 오히려 핵실험 강요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북한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모습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단, 말리는 중국의 입장과 예측불가능한 트럼프의 오판을 감안해 수위만을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 4월 말 한·미연합훈련이 끝나가는 시점에 이를 명분으로 ICBM 1단 추진체를 연소시켜 일단 공중에 띄우거나 멀지 않은 거리를 비행하도록 할 수도 있다. 신포에서 단거리나 준중거리 신형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보이며 고체연로 엔진으로도 ICBM 개발을 한다고 엄포할 수도 있다. 4말 5초 북한의 도발이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 모두 절충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할 수도 있다. 지금의 군사적 긴장감이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호들갑과 두려움만이 가득한 모습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무협소설의 결말이 기대된다.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보다 서울파가 어찌될지가 더욱 궁금하다.

김동엽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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