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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삼성동 큰엄마

opinionX 2017. 4. 26. 10:50

모든 큰엄마는 맏며느리다. 요즘 시대에는 안 맞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맏며느리감이라는 표현은 여성에게 최고의 상찬이었다. 마음이 착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일처리가 야무지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었다. 요리나 바느질 등 집안일을 잘하고 효심도 지극해야 한다. 지적 능력은 물론이고 손아래 동서들을 이끌려면 리더십과 카리스마도 있어야 한다.

시동생들이 결혼하고 분가해서 자식들을 낳으면 맏며느리는 자연스럽게 큰엄마가 된다. 큰엄마는 엄마와 다른 면이 있다. 엄마보다 대범하고 품이 넓다. 명절 때는 손 크게 음식을 장만해 아낌없이 나눠준다. 김장도 배추 몇십 포기씩 더 한다. 어른들에게 공손하고, 집안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기면서도 힘들어하는 내색이 없다. 큰엄마의 손맛이 밴 큰집 음식은 가부장적 유교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식혜나 수정과는 큰엄마가 만든 것이 최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지만 어느 순간 큰엄마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꼭 닮아 있다.

2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최순실씨(왼쪽 사진)와 조카 장시호씨가 각각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큰엄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엊그제 법정에서 장씨는 ‘조서에 큰집 엄마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누구냐’는 최씨 측 변호인의 질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며 “큰엄마란 말도 박 전 대통령을 일컫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이어 “저희 가족들끼리는 박 전 대통령을 그렇게 불렀다”며 “제가 어렸을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신사동에 살았던 때부터 이모들과 부모님도 그렇게 불렀다”고 덧붙였다.

장씨가 박 전 대통령을 부를 때 사용한 큰엄마의 의미와 이미지가 장삼이사들에겐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씨 일가가 박 전 대통령이 매우 친한 사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 2층에 있는 돈으로 딸(정유라)과 외손자를 키워달라고 장씨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최씨로서는 박 전 대통령의 옷값과 미용 비용 등을 댔으니 삼성동 집에 있는 돈을 쌈짓돈처럼 여긴 것이다. 앞서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 삼성동 자택의 집기와 가구를 처분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는 일심동체일 뿐 아니라, 경제 공동체이기도 하다는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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