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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지난 15일 발생한 ‘전국적 규모’의 정전은 1960년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미국과 일본에도 없는 고압(765㎸) 송전망에다 국토면적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집적도를 자랑할 정도로 걱정 없이 투자비를 쓴 국영독점전력산업이 큰 사고를 쳤다.
<경향신문 DB>
이상고온, 무절제한 소비 등 많은 이유들이 변명처럼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력수요 하계성수기가 다 지난 지금 7800만㎾ 설비용량을 가지고도 6700만㎾ 정도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예고방송도 못하고 다급하게 정전을 단행한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더욱이 예상외(?) 수요 증가량이라는 게 공급능력의 2.5% 수준인 200만㎾ 정도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직접 점검이 없었다면 값싼 전기를 낭비한 소비자 탓으로 쉽게 결론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요금인상 필요성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전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전력시스템 운영에 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감독당국과 전력사업자들의 의사결정 때문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다 못해 “예고는 요란하나 결과는 허무하다”는 ‘태산명동(泰山鳴動) 서일필(鼠一匹)’이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전력은 최고급 에너지로 국민생활과 경제활동의 ‘공공·필수재’이다. 이에 전력시장에는 요소 투입에 의한 확대재생산 논리나 경쟁의 시장효율화 논리 적용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세계 전력시장은 시장 실패와 공공독점을 수용하면서도 전문성 있는 규제기관이 공공이익 보호 책임을 맡고 조금씩 시장논리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무조건적인 시장논리로 전력이라는 공공·필수재를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전통’에 근거한 관료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당연히 관련 산업과 규제분야 책임자들은 ‘시장 실패’를 수용하면서도 이를 최대한 보정할 수 있는 전문성을 충분히 갖춘 것 같지 않다. 경영실패를 초월하는 독점이윤을 ‘영구’ 보장하는 수준의 전기요금 쟁취를 능력으로 생각하는 민간기업 출신들과 어설픈 시장논리를 강조함으로써 당장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감독관청이 공존하고 있다.
이상고온 예보가 지속되는데도, 기온 1도 상승은 100만㎾ 이상의 수요 증가를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무시하고 추석 연휴를 전후해 전체 설비의 10% 이상을 일시에 보수하기로 한 결정은 공공설비를 편의적으로 운영하는 관료주의의 전형이다. 당연히 운전대기해야 할 125만㎾의 법정 예비발전소가 연료비 절감을 이유로 전혀 가동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어설픈 시장논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할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지연된 설비투자가 2015년에나 완료되기 때문에 동태적 수요예측 능력과 공급 효율화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자칫하면 정전사태 재발이 우려된다. 전문가 영입에 의한 감독체계 개편과 책임경영체제 도입이 가장 시급하다.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전기위원회를 고도의 전문성을 갖도록 개편해 감독기능을 일임할 수도 있다. 전력산업 ‘거버넌스’ 선정 과정에 공공사업 운영의 전문성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어설픈 시장논리 조기 도입도 재고해야 한다. 녹색성장 지원을 위한 무리한 대체에너지 도입 의무나 배출권 거래를 중지해 투자재원의 비효율적 분산을 막아야 한다. 이번 정전사태로 인한 소비자들의 손해를 현실적 수준에서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또다시 ‘태산명동 서일필’이라는 서글픈 자책을 하지 않도록 ‘냉정한’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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