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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요청’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여는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딱 50분만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찬강연을 해달라면서 ‘약소해서 죄송하다’는 표현과 함께 제안된 강연료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기업 전문강사가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를 알 만했다. 게다가 너무 논쟁적인 주제는 피해달라면서 평소 책에서 하던 이야기를 가볍게 언급하면 충분하다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없다. 최저임금으로 하루 8시간씩 한 달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을 1시간 만에 벌 수 있다니 어찌 호흡이 가빠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수락을 못했다. 하필 그날이 대학교 개강일이었다. 수업시간인 9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일정이라 아쉽지만 거절했다. 휴강의 유혹도 있었으나 내가 그래도 대학 교육자라는 사실을 차마 스스로 부정할 순 없었다.
복권 당첨을 눈앞에서 놓치는 경우를 예방하려면 앞으로 대학 강의를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번에 75분 강의를 하기 위해 왕복 3시간을 이동한다. 이 짓을 한 달에 여덟 번을 하고 시간당 6만원 기준으로 72만원(세전)을 4개월 동안 받는다. 한 번 강의에 9만원인 셈이다. 과제와 시험을 채점하고 첨삭하여 돌려주는 초과노동은 기본이다. 출결사항을 학교 시스템에 직접 입력하고 사이버 캠퍼스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과제도 시험도 없는 기업 강연을 1시간만 하면 대학 시간당 강의료의 30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다. 알고 보니 내가 제안받은 금액은 방송에 자주 나오는 스타강사나, 석학 수준의 명사들이 받는 금액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대학 시간강사 월급의 3개월치보다 많았다. 재미난 건 내가 대학에서 받는 시급 6만원은 사립대학 중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
배알이 꼴려서가 아니라 대학이 너무 우습다는 거다. 객관적으로 지식 노동에 대한 단가가 너무 낮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면서 제안하는 고등학교 특강도 30만원 아래로는 강사 초빙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비영리 조직이라 형편이 좋지 않다’는 시민단체에서도 최소 20만원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딱 한 번만 와 달라고 부탁한다.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대상으로 과외교습을 하면 주 2시간 2회 기준으로 최소 50만원은 받는다. 시간강사와 이들은 진배없다.
12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좋게 생각하려고도 했다. 단순하게 최저임금에 비하면 시간당 높은 급여라고 위로하며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강의를 9개(27학점)나 맡아 그저 매달 들어오는 돈을 보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강사 경력은 교수 채용 과정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책 읽고 논문 쓸 시간에 강의나 돌아다녔다는 책임만을 혹독하게 질 뿐이다. 그렇기에 평생 시간강사만 해야 될 운명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사십이 넘어가면 몸과 마음이 지쳐서 여기저기 떠돌기도 어렵다. 대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노동이겠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티지 못하는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
대학은 시간강사 없이는 자신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없는 구조다. 기능적으로 시간강사는 대학의 필요한 존재지만 대우는 형편없다. 대학이 교수가 아닌 연구자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이를 증명하다. 강의전담교원이나 연구교수 같은 이름만 그럴싸한 타이틀을 얻고 1~2년 후 해고될 사람들이 받는 급여는 한 달에 250만원 남짓이다. 나 역시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직장인처럼 출퇴근하면서 연봉 3000만원을 받고는 가족을 부양할 자신이 없어서 거절한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사회학인지라 나는 강의 때마다 최소 1분은 “내가 이 돈으로 강의해야 하나” 하면서 신세한탄 중이다. 수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다고 학생들이 학교에 항의해 강사 재위촉이 되든 말든 상관없다. 그 돈은 ‘없어도’ 사람의 생활을 아프게 할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
<오찬호 | 작가·<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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