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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재단의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학교의 종교적 지향성이 무엇이든 나는 차별에 반대하는 사회학을 열심히 강의했다. 학생들은 인종, 계급 나아가 ‘남녀’로 국한된 성차별에 대한 논의까지는 어떻게든 잘 듣는다. 하지만 성소수자로 논의가 확장되면 난리다. 그 공간을 홈그라운드라고 느끼는 자들의 반론은 거칠고 투박하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반대하지만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앞뒤 안 맞는 말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황당함에 굳이 대꾸를 안 하면 더 날뛴다. “태초에 신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만 만드셨다”는 말이 나오면 참다못해 내가 중재한다. “여기는 주일학교가 아닌데요.”

다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사회학 수업에서조차 성적지향과 성적취향을 구분 못하고 “나는 동성애를 혐오할 자유가 있다”는 무서운 주장을 한다. 물리학 수업에서 중력이 없다고 우기는 꼴이지만 평생을 이성애자로 살아온 자신의 관성에 따라 세상을 규정하겠다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여론이 이러하니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지킬 수 있는지를 가혹하게 검증받는다. 동성애 찬반은 토론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주제지만, 가장 최근의 대통령 후보 토론회도 딱 주일학교 수준이었다.

오랜 역사에서 이성애자가 100%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껏 이성애자가 아닌 자를 이성애자로 바꾸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죄다 실패했다. 그리고 동성애를 인정한 어떤 사회도 동성애가 범람한 적도, 사회가 혼란에 빠진 적도 없다. 이성애자의 앞길이 막힌 적도 없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자와 사랑을 하니 당연하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보았다면 인류가 할 일은 사람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다. 철 지난 ‘정상 이데올로기’를 고수하여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건 결코 사람의 자유가 아니다.

헌법의 양성평등 문구를 ‘성평등’으로 바꾸면 성소수자가 인정된다고 우려들을 하는데, 그리 되기 위해서 바꿔야 한다. 사회적 합의 운운하지만 절대다수가 이 개념을 처음 인지할 때 ‘더럽다’는 표현을 함께 접하는 상황에서 합의는 차별을 정당화할 뿐이다. 어릴 때부터 “너 게이야?”라는 말을 하거나 들으며 자란 사람들의 의견은 진심일수록 기울어져 있을 뿐이다.

나 역시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 대학 강의를 처음 했던 12년 전의 일이었는데, 본인을 성소수자라고 밝힌 학생으로부터 e메일을 한 통 받았다. 차별에 반대하는 수업이 고맙지만 내가 ‘우리’라는 말을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동성애자는 우리와 다를 바 없어요. 우리처럼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사랑하고 아니면 아닌 거고.” 강의실 안의 모두가 이성애자로만 설명되는 것처럼 그들은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니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 되어야 한다. 이 단어의 변화가 지금껏 배제당했던 소수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얻는 초석이 된다니 박수로 맞이할 일 아니겠는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동성결혼 합법화까지 가능하다니 더 환영이다. 아파트 없이 재산증식이 불가능한 부동산의 나라에서 동성 커플은 신혼부부 청약조차 불가능하니 이야말로 엄청난 차별 아닌가? 이웃에 동성부부가 있다면 자녀들 교육상 걱정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랑 사랑하는지는 나의 불편과 전혀 상관이 없다. 만약 동성애자라서 더 층간소음에 무심하고 아무 데서나 흡연하고 주차를 엉망으로 한다면 모를 일이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이 문자를 보냈다. 미투 운동을 내버려두면 동성애가 인정되고 동성결혼이 허용된다는 내용이었다. 우와! 정말 열렬히 미투 운동을 지지해야겠다. 세상이 달라져서 사랑하는 자 누구나 결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멀었다면서 결혼의 쓴맛을 뼈저리게 경험했으면 한다. 이성애자만 이렇게 억울할 순 없다.

<오찬호 | 작가·<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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