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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심야택시와 야간노동

opinionX 2022. 10. 19. 16:46

출장 때문에 막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택시 없는 택시 정류장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만 바라봤다. ‘예약’ 글자를 연두색 빛깔로 내뿜는 택시들이 하나둘 도착했고, 줄을 선 사람이 아니라 호출에 성공한 사람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앱을 켜고 온라인 택시정류장에 접속해 손을 흔들어 봤지만, 어떤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비싼 택시를 호출할까 했더니, KTX와 비슷한 요금에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한적한 도로를 걷고 또 걷다가, 30분 만에 지나가는‘빈차’를 온몸을 흔들어 잡았다.

뒷좌석에 피곤한 몸을 누이니 노곤해지면서 택시가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그 순간 운전석에 앉은 노동자의 희끗희끗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 택시는 언제 집에 들어갈까. 심야택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금 저녁 유흥가 주변에는 택시 노동자와 손님의 크고 작은 실랑이를 볼 수 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손님, 욕하고 토하는 손님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다. 한 번은 술 냄새를 풍기며 택시를 탔는데, 택시 노동자가 봉지를 건네주고 창문을 열었다. 나야 1년에 몇 번 없는 과음이었지만, 택시 노동자는 매일 밤 만나는 끈적하고 불쾌한 승객이었을 테다. 이런 택시 노동자의 야간 노동 문제는 놓아두고 심야택시 문제 해결을 위해 탄력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탄력요금제는 택시산업의 플랫폼화를 전제한다. 탄력요금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수요공급을 파악할 수 있는 빅데이터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요금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플랫폼의 가격결정이 수요공급에 의한 것인지,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배달의 실시간요금제가 그렇다. 평소엔 배달 한 건당 2500원이고, 피크시간에는 5000원 정도로 올라간다. 라이더들은 당연히 피크시간에 무리하게 운행할 수밖에 없다. 탄력요금제하에서 택시 노동자는 야간노동에 내몰릴 위험이 크고, 소비자 역시 알기 힘든 요금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 카카오택시가 처음에 무료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플랫폼에 대한 통제 수단 없이 공공성이 강한 서비스를 기업에 맡기면 나중에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타다 부활 이야기도 나온다. 타다 노동자가 혁신적으로 친절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앱이 아니라 시급 1만원을 보장하는 임금체계 때문이었다. 타다는 노동자에게 고정급을 줬지만, 근로자로 고용한 건 아니라서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여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타다를 부활시켜야 한다면, 온전한 월급제이지 앱 자체가 아니다. 사납금 제도하에서는 골목 안까지 들어가는 택시가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택시회사가 노동자에게 대화를 금하고 클래식을 틀라고 지시할 권위도 없다. 심야택시 대란 문제 해결은 2급 발암물질인 야간노동의 증가를 의미한다. 야근이 없고, 늦게까지 술 마시는 회식이 없다면, 심야택시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운영할 수 있다. 심야택시 공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수요를 줄이는 게 혁신이다. 택시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심야택시 대란을 해결하는 방법은 택시 소비자와 택시 노동자의 노동조건 모두의 향상이다. 밤에는 도시도 자야 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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