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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심쿵과 소확행

opinionX 2022. 2. 15. 10:04

죽음의 레이스. 약 3주 앞둔 대통령선거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다. 대통령 후보 가족에 대한 수사, 최측근에 대한 수사, 상대 후보에 대한 수사,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적 수사가 온통 수사뿐인 작금의 상황이 혼란스럽다. 한쪽이 승리하면 다른 쪽을 파멸시키리라 호언하는 정국에서 국정의 전망은 실종된 지 오래다. 생활의 세계에서 시민들은 이웃을 지키기 위해 각자 기술을 익히고, 의술을 배우건만, 정치의 세계는 지키는 것보다 없애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대통령이 곧 파괴자임을 상징하는 선거 속에, 삶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약속은 실종된 지 오래다. 무해한 이들에게 나눠줄 떡고물 같은 정책 공약 몇 개만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흩날린다. 윤석열 후보의 ‘심쿵’공약이, 이재명 후보의 ‘소확행’공약이 그 대표격이다. 생활밀착형 공약이라는 양 후보의 ‘심쿵’과 ‘소확행’ 공약은 어떤 근본적 차이를 보이는지 전문가도 구분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실정이다. 어설프게 닮은 것도 문제지만, 두 공약 모두 장기화된 코로나19 위기 속 출구 없는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시민의 삶을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총체적 난국이다. 당장 현실이 시궁창인데, 유튜브에서 양측 후보가 영웅처럼 등장해 호기로운 제공을 약속하는 각종 떡고물 영상을 볼 때면, 그들의 비대한 자아 앞에서, 허전함과 괴리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 공약이 온통 실종된 대통령선거다. 차별받는 소수자들은 진심 모를 후보들의 당선을 기다리지 않고, 거리를 나섰다. 중앙정치인들이 온갖 죽음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동안, 희귀질환자와 장애인은 함께 살아남을 힘과 용기의 가치를 자신에게 찾는다. 검은 양복 차림의 남성들이 약속하는 심쿵과 소확행의 시리즈가 랜선에서 흩날리는 동안, 거리의 시민들은 지난 두 달간 척수성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노금호씨를 위해 각 정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면담을 촉구했다.

이기적인 대선 정국과 달리, 그 누구도 개인의 영달을 목적하지 않았다. “내 친구 금호를 살려주세요”가 외침의 전부였다. 빠르게 온 근육이 빠져나가고, 점점 호흡조차 힘겨운 그를 살릴 치료제 ‘스핀라자’를 목전에 두고도, 3세 이하에 발병했는지 알 수 없어 의료보험 급여 적용 대상에서 탈락했다는 사연에 분노한 이들은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3세 이하 발병자만” “호흡기 착용자는 제외” “눈에 띄는 개선 없을 시 투여 중단” 등 영문 모를 이가 정한 인위적 보험급여 행정 기준 앞에서, 희귀질환자들이 자신을 살릴 약의 존재를 알고도 투여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 서서히 진행되는 신경근육병을 앓았다는 이유로, 의료접근성이 좋지 못한 지역, 장애에 대한 인식이 늦었던 가족 곁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생존 앞의 죽음을 직면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단내 나는 대선. 정체 모를 심쿵과 소확행 공약만이라도 최소한의 진심을 담길 바란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두려움을 해소하는 정책. ‘소수자에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정책. 파멸예고에 곁들인, 대중영합주의에 편승한 공약이 아닌, 불합리한 행정 기준 속 죽어가는 이웃을 살리기 위한 공약의 뜻으로 호명되길 바란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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