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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선거 서울 종로에서 대결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왼쪽)가 주말인 4일 명륜동의 한 골목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재동초등학교 삼거리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최악의 선거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갈릴 뿐, 이번 총선이 1987년 이후 최악의 선거라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한답시고 도입한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을 내세운 거대양당들의 꼼수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유권자들은 지역구만이 아니라 이제 정당투표에서마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거꾸로 가는 것이 정치다. ‘87년 체제’는 청산은커녕 외려 더 강화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한동안 완화되는 것처럼 보였던 지역대결과 이념대립 역시 다시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들은 편으로 갈려 패싸움을 벌이다가 ‘성공의 비결은 역시 반칙과 꼼수에 있다’는 삶의 지혜(?)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

한쪽에서 이번 선거를 ‘한·일전’으로 규정하자, 다른 쪽에서는 ‘한·중전’으로 규정한다. 한반도를 배경으로 엉뚱하게 중·일전쟁이 재연된 셈이다. 도대체 이 시점에 80년 전의 전쟁을 재연하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싸움의 당사자들은 자못 진지하다. 난무하는 선동 속에서 그들은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며 진심으로 ‘증오’한다.

이낙연 후보가 뜬금없이 “황교안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증오의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모양이다. 이에 황교안 후보는 눈치 없이 “이들을 미워한다.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대꾸했다. 두 대권주자 사이에 벌어진 이 유치한 논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움’이라는 감정이 정치적 의제로 떠올랐다는 점이리라.


양자택일 강요받는 최악 선거 

상대를 적으로, 증오하는 정치 

유세 중에 돌 던지고 폭행하고 

선거 곳곳 ‘증오 범죄’ 행위들 

이긴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지만, 그 사랑보다 강한 것은 증오의 감정이다. ‘증오’의 정치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중은 머리로 이해하기 힘든 고통의 ‘원인’ 대신에 당장 눈에 띄는 그 고통의 ‘범인’을 찾아 가슴으로 증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온라인에만 머물러 있던 이 증오가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오프라인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모양이다. 지난 2일 화성병 지역구에서 통합당 후보의 유세방해 사건이 벌어졌다. 40대의 남성이 후보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신체적 위협을 가하며, 연설원의 마이크를 빼앗고, 차량발전기 문을 열어 스위치를 내리려 하는 등 유세를 방해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에는 남양주시에 출마한 통합당 후보의 머리 위로 벽돌 두 개가 날아오는 아찔한 사건도 벌어졌다. 경찰에 따르면 누군가 건물 위에서 의도적으로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대구에서는 누군가 민주당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계란을 투척했다.

만만한 소수정당의 후보들도 증오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정의당 후보와 선거운동원이 서울 노원병에서 유세를 하던 중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폭행을 당한 바 있다. 같은 달 5일에는 성북구에 출마한 민중당 후보가 1인 선거운동을 하던 중 행인에게 얼굴을 폭행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일에는 마포구 홍대입구 역에서 유세 중이던 여성의당 후보에게 돌이 날아와 자원봉사자가 상해를 입었다. 돌이 날아온 곳에는 2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있었다니, 여성혐오 범죄로 보인다. 최근 젊은 남성들의 상당수가 페미니즘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이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좌절과 분노의 표적이 된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원래 물리적 갈등과 신체적 충돌을, 의회 안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그런데 정당정치가 외려 지지자들을 증오와 폭력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정치폭력은 주로 권력의 사주를 받은 이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반면, 우리가 보는 것은 대중의 자발적 폭력이다.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민들이 혐오의 정치에 빠져드는 것은, 고통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심리적으로 ‘해소’라도 하기 위해서다. 시민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과제라고 할 때, 혐오의 정치가 난무한다는 것은 곧 우리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 실패에서 비롯된 대중의 좌절과 분노를, 정당들은 다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어느 쪽 증오에 표를 줘야 할까? 도대체 ‘이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는 선거. 이번 총선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의 무덤이 되어 버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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