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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섬진강에 나섰다. 다행히 4대강 축에 끼지 못했던 섬진강에는 모래사장이 남아 있다. 발목쯤 잠기는 자리, 물속 모래를 헤치면 재첩이 있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모래를 휘저으면서 걷는다. 발가락에 단단한 껍질이 걸린다. 하나씩 재첩을 집어 올린다. 둘이 같이할 때는 한 사람은 모래를 헤집으면서 걷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 드러난 재첩을 줍는다. 이렇게만 해도 식구들이 두고두고 먹을 만치 재첩을 잡을 수 있다. 봄에 산나물하듯, 때맞춰 하는 살림살이. 아이들도 저마다 한 움큼 재첩을 잡았다.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 아이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면 먼저 귀가 쏠린다. 그렇게 듣는 이야기가 노골적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적으로는 부모가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릴 때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친구 같은 아빠’다. 아이들이 친구와 노는 것이 그만큼 어려우니까 아빠한테 친구 노릇까지 떠맡기는 것이겠지. 친구 노릇에는 젬병인 나는, 내 속 편하자고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 친구처럼 같이 노는 일은 아무래도 능력 밖의 일이니까, 재첩을 잡으러 갈 때에 섬진강에 함께 가고, 논두렁을 바를 때는 봇도랑에서 놀라 하고, 겨울에는 함께 산에 가서 갈잎과 잔가지를 주워 모은다. 때맞춰 일하러 나가는 길에 아이들이 가서 놀 만하다 싶으면,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속으로는 놀면서 봐 두었다가 어여 너희들이 이 일을 대신 해 주기를 바라는 심산인데,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그렇게 따라나선 길에 스스로 잘 논다는 것. 아마도 세 아이가 함께 있어서일 것이다. 저들끼리만도 친구처럼 놀 수 있으니까.

자주 듣는 이야기로, 아이가 셋이나 되니 얼마나 힘들겠냐고 한다. 하지만 세 아이가 모여서 늘 우당탕거리는 집구석에 살게 된 이후로, 우당탕의 힘겨움이야 뼈저린 것이 되었을지언정, 하루 종일을 아이 한 명과 단둘이 지내야 하는 엄마, 혹은 아빠의 괴로움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 되었다. 한 아이와 지내는 부모일수록 ‘친구 같은’의 압박에 더 시달리는 것 같다. 그래 보인다. 일단 아이가 둘이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니까,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아이들도 쉽게 알아채지만, 아이가 혼자면 그것도 어렵다. 어쨌거나 세 아이와 함께 살면서,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으면, (내가 듣기로는) 아이가 바라는 것도 결국은 ‘친구 같은 아빠’보다야 그냥 친구이다. 아빠는 아빠고, 친구는 친구. 좀 더 다정하다거나,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수 있다거나, 아이 생활에 관심이 많다거나 하는, 아이가 그런 아빠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아이는 여러 식구와 이웃,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자라게끔 되어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어린 시절을 돌아보자면 아빠가 친구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부모 말고 다른 관계들이 파탄나면서, 그리고 그야말로 아이와 사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당장에 그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맡던 역할들이 거의 부모한테로 넘겨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뾰족한 수가 없는 부모들은, (특히 육아를 전담하는 한쪽은) 그렇게 부여받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차서는, 수시로 내 잘못이라고 되뇌고, 아이한테는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다.

주위에서 누군가 아이를 낳고, 필요한 물건이 뭐냐 하고 물으면, 우선 두 가지를 먼저 얘기해 준다. 하나는 아기를 오래 업어도 불편하지 않을 아기띠(이것은 포대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아무래도 이 물건을 만든 것은 아이를 업고도 다른 일을 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게 아닐까 싶다), 또 하나는 무릎의자(닐링체어).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잠든 아기를 업은 채로 책상머리에 앉아 꽤 오랜 시간 뭔가를 할 수 있다. 청소든 빨래든 집안 꼴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잠시라도 짬이 나면, 나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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