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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통계를 보면 중학교 한 학급에는 학생이 평균 30명 있다. 이 중 6~25등은 일반고에 가는 학생들이고, 대학입시에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가지 못하지만 대학은 진학하는 수험생들이고, 대기업에는 가지 못해도 중소기업의 대부분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입시 문제는 중학생 때부터 1~5등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림잡아 1~2등을 모아놓은 과학고와 외고 등 특수목적고, 3~5등을 모아놓게 될 자립형 사립고가 쟁점이 된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해체하지 않을 경우 일반고는 실업계에 진학하는 나머지를 제외하면 중학교 때 6~25등을 하던 학생들의 학교가 된다. 대학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1~5등을 어떻게든 확보해 실적과 학급 분위기를 잡으려는 공립 일반고의 발버둥을 읽어낼 수 있다. “수능 정시냐, 학생부종합전형이냐”라는 대입전형 논쟁도 초점은 1등급과 2등급이 나올 수험생들의 경쟁에서 제기되는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다. 3등급 이하 수험생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중 75%가 대학에 진학하는 시대에, 60%가 넘는 수험생의 사정은 음소거 처리되는 셈이다.

대학생활도 1~5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거점 국립대학 학생들의 공부와 대학원 진학, 취업이 주된 이슈가 된다.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로 대표 되는 영어점수, 각종 자격증, 인턴십, 교환학생, 해외 연수 등 자기계발에만 열중한다는 말도 1~5등 이야기다. 취업 준비에 대한 제대로 된 목표조차 정하기 어려운 지방대생들은 언급의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취업난도 1~5등 이야기다. 연초 대기업 집단의 경영계획이 발표되면 신규 채용 인원이 나온다. 언론은 대기업 공채, 공기업, 공사, 공무원 채용 인원을 통해 청년 취업문제에 대한 기사를 쓴다. 지레 겁먹고 9급 공무원 도전도 저어하고 중소기업에 가겠다고 말하는 지방대생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채용부터 ‘제도’와 ‘프로세스’가 미비한 중소기업의 실정은 예외일 따름이다. 그만두는 날까지 ‘부당함’에 대해 다른 감각을 갖고 살게 될 이들의 이야기는 ‘노동이슈’로만 등장한다.

대학교육이 취업으로 인해 본연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말이 10년이 넘게 반복 중이다. 한국사회학회에 발표된 최종렬의 ‘복학왕의 사회학’이라는 논문은 그 말이 얼마나 현실감이 없는지 드러낸다. 중·고등학교부터 교육은 그들에게 적절한 목표를 준 적이 없고 부족한 점을 채워준 적이 없다. ‘대학생이면 으레 기대되는’ 목표와 자신들의 삶이 유리되어 있음을 간파한 6~25등은 전공공부와 치열한 자기계발, 적극적인 구직 모두 동참할 생각이 없다. ‘복학왕’에 등장하는 행태만 떠돌 뿐 맥락은 묻히고 마는 게 문제다. 다른 한 편,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가지 않는다는 한탄이 줄을 잇는다. 그런 서사 속에서도 여전히 강조되는 것은 1~5등이다. 성실함으로 회사를 떠받치고 있는 6~25등들은 자신들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에서조차 주눅이 든다.

나는 6~25등의 관점에서 사회를 읽어보는 게 지금까지 다뤄보지 않은 한국 사회의 혁신이고 진보의 출발점이라 본다. 이들이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에서 배움의 재미를 포기하지 않고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면 교육이 혁신한다. 이들의 직무역량이 올라가면 중소기업이 혁신된다. 이들이 직장에서 제 대접을 받으면 한국의 노동인권이 진보한다. 이들이 다니는 직장에서 여성들이 경력단절에서 밀려나지 않으면 한국의 유리천장에 큰 균열이 간다. 정권이 바뀌고, 수월성 교육에 대한 반성과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다. 교육과 노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지금 시급히 바꿔야 하는 것은 초점을 맞출 대상이다. 6~25등이 교육과 노동의 목표에서 유리되지 말아야 한다. 1~5등에 대한 투자는 이미 수확체감의 포화상태다. 6~25등에 대한 투자가 미래다.

양승훈 | 문화연구자·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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