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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사퇴한 날 법무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글 하나 제목은 ‘(조국은) 불멸의 영웅’이다. 윤석열을 두고도 광화문광장에 ‘국민영웅! 윤석열 총장님! 쫄지 마세요!’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두 사람을 두고 악마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극렬 지지자나 반대자들에겐 이 싸움은 성전(聖戰)이다. 10·26엔 다시 박정희 영웅화가 벌어진다. 한 단체는 40주기 추도식 때 ‘부국의 영웅’으로 수식했다. 황교안 등이 몰려가 박정희 정신을 배우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구미시장 장세용은 추도사에서 박정희를 ‘세상을 끊임없이 바꿔 나간 혁신가’로 칭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권력자의 문제를 두고 왕조 시대의 영웅과 역적의 서사, 중세의 악마까지 끌고와 다툰다. 집권세력과 야권은 각각 극단의 주장과 믿음에 편승하거나, 스스로 조장하려 든다. 상식과 보편의 가치로 판단할 일을 극단으로 끌고온 건 이들 세력이기도 하다. 집권세력은 핍박받는 야당인 양 박해와 저항의 프레임까지 만들어 ‘조국 사태’에 임했다. 그 직전 프레임은 ‘반일 민족주의’였다. 그 많던 반일 민족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왜 반일 민족주의가 ‘반검찰’과 ‘친조국’으로 대체됐는지 그 의문을 해소할 합당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이들의 이슈전은 그때그때뿐이다. 2016년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나라가 망할 듯 필리버스터를 벌인 이들이 정작 집권 3년차에도 폐지는커녕 개정안도 발의하지 않았다.
이들 세력과 진영은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듯하나 여전히 ‘적대적(으로 보이나 실은) 공생(하는) 관계’다. 이런 관계의 본질은 노동과 경제 문제를 두고 확연히 드러난다. 여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두고 대치하면서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탄력근로제를 31일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권력자들은 재벌을 만나 애로사항 해결을 약속한다. 집권세력의 ‘노동 존중’ 포기에 대해 야권이 결사반대하는 일은 없다.
노동과 삶 문제에 관해서라면 세상은 여전하다. 권력 핵심부는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김현철은 청와대 경제보좌관일 때 “(20·30대는) 여기(한국)에 앉아서 취업이 안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아세안 국가를 보면 ‘해피조선’이 된다”며 동남아로 가라고 했다. 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병규는 주 52시간제를 두고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영웅 서사는 인재 서사로 이어진다. 장병규는 ‘전통적 노동자’와 구분한 ‘인재’를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현 청와대 경제수석 이호승은 “톨게이트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경쟁’과 ‘혁신’, ‘인재’를 내세우며 ‘도태’를 자연시하는 이 정권이 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저출산 문제 해결 뒤 태어난 아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인재가 되는 것인가.
세상을 주무르는 권력자들에겐 사람들은 잇속을 위한 도구와 업적을 과시할 거시 통계의 숫자일 뿐이다. 개별의 해고와 실직, 감정노동과 죽음 같은 삶의 파탄을 ‘부수적 피해’로 여긴다. ‘4차 산업혁명’의 부추김 속에 노동자들은 사라지거나 죽어간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25일 한 시멘트 공장 환풍시설 안에서 32세 노동자 박모씨가 숨진 사실이 알려졌다. 사망일은 박씨 생일이었다. 티센크루프의 협력업체 노동자 5명이 안전사고로 죽었다. 기득권들은 절망적 죽음을 절실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권력 쟁취와 선거 승리를 위해 서로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면서도 자신들만이 세상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낙관주의를 퍼뜨린다. 이들의 언어엔 아름다운 선언과 감성을 자극하는 말이 가득하다.
“우리는 낙관주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만인의 사랑을 받으리라고 기대되는 사랑스러운 세계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 있더라도 오직 정의를 편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수행해야 할 국지적인 과업 몇 가지를 떠맡을 따름이다.” 좌파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낙관하지 않는 희망>(우물이 있는 집) 첫 장에 영국의 신학자 허버트 매케이브의 이 말을 인용한다.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의 활동이 이 말에 부합한다. 아들의 죽음 이후 줄곧 산재 현장과 투쟁 현장을 찾아다녔다. 김용균재단 초대 대표를 맡은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 세력이나 정계 쪽에서는 기업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출범일인 지난 26일은 김용균이 숨진 지 321일째 되는 날이다. 김미숙은 “아들의 죽음 이후로도 사회가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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