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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무총리는 참 어려운 자리이다. 그 출발은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제정 헌법이다. 각료 제청권 등 헌법상 권한이 작지 않지만 제대로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대쪽 판사’로 소신이 하늘을 찔렀던 이회창 총리가 헌법상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려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전격 교체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 외 정·관·학계 출신의 명망가 총리들이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국정쇄신 카드로 쓰여온 게 헌정사의 풍경이다. 이낙연 총리(45대)까지 내려오는 동안 재임기간 1년을 넘긴 경우는 20명 남짓이라는 점이 이를 웅변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이낙연 국무총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총리가 대선주자 반열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이회창을 제외하고는 당선권에 들 정도로 의미 있는 후보가 된 사례도 없다. 총리를 두 차례 지내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 고건은 지지율 1위를 달리다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자신할 수 없게 된 것도 ‘총리 잔혹사’를 부추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장상, 장대환 두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낙연 총리가 28일로 김황식 전 총리의 재임기간을 뛰어넘어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정치권의 대립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나온 기록이라 더욱 눈길이 간다. 우선 이 총리처럼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를 재치 있게 받아넘긴 경우가 별로 없었다. 공무원들로부터 인기가 없다는 평이 있지만, 공직의 매너리즘을 질타하는 것은 백번 잘하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투톱 외교’를 펼치고, 특히 대일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있다. 2인자 처신에 능한 전통적인 총리상에 자기만의 색깔을 가미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선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이 총리가 총리 출신 첫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데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빼어난 언변과 균형 감각을 뛰어넘는 소신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때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고 하지만 결론을 바꾸지 못했다. 매끄러운 처신이나 수성의 방식으로 최고 지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아는 이 총리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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