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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온라인게임도 맘껏 할 수 있어 온라인개학이 너무 좋다던 우리 집의 두 초등학생이 얼마 전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 얼굴을 보고 싶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싶다고 했다. 이젠 친구들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 진심으로 하는 얘기 같았다. 지난 5개월간 부모 돌봄에서도, 학교 교육에서도 방치돼 있다시피 했던 이 아이들이 어른 못지않게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이번주 초등학교도 등교개학을 시작한다. 연일 담임 선생님의 알림 메시지, 전화를 받으며 교육당국과 학교가 대비를 많이 해둔 것 같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언제든 다시 학교 문이 닫히는 걸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게 등교개학 며칠 뒤일 수도 있고, 2차 대유행 때일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생업에 종사하는 어른들의 고통이 크지만, 그 고통은 아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아이들은 단지 학교에 갈 수 없어서, 친구들과 만날 수 없어서 힘든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허둥대는 이 초유의 사태를, 아이들도 지켜보며 마음속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초등 2학년인 둘째 아이는 TV, 유튜브를 통해 이번 감염병 확산의 요인에 기후변화가 있고, 앞으로 비슷한 일이 더 잦아질 수 있음을 막연히 이해하고 있다. 기후변화 추세를 지금처럼 놔두면 몇십년 가지 않아 지구에 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얘기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뒤 아이에겐 집 안의 전등을 끄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버릇이 생겼다. 자신이 어른이 된 뒤에도 지구가 지금처럼 남아 있으려면 또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어른들은 뭘 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기성세대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큰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코로나 전과 후가 다를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자본주의 세계화와 엄청난 소비로 지탱되어온 일상을 지속해도 좋을지 질문을 던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으로 기본소득의 첫발을 떼고, 전 국민 고용보험 논의가 시작되는 등 과거 생각하기 어려웠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른 한편 과연 얼마나 변할 것인가 회의도 든다. 공공의료 강화를 우선 논의해야 할 때에 정부가 의료영리화로 이어질 원격의료를 ‘비대면의료’로 이름만 바꿔 추진하려는 모습에 그런 회의가 강해졌다. 원격의료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비대면의료 서비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 발굴에 상상력을 발휘해 달라”고 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추진 의사를 밝힌 뒤 논란이 됐다. 한 보수언론은 대통령까지 얘기했는데 뭘 망설이느냐며 정부를 채근한다. 기재부가 발표한 ‘한국형 뉴딜’은 ‘4차 산업혁명 버전 2.0’에 다름 아니었다. 지금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기보다 해오던 방향 그대로 밀어붙이려는 관성이 놀라웠다. 경제관료들이 매달리는 그 집요한 방향성은 어디서 오는가.

‘상상력’이 재난으로 인한 충격을 계기로 자본의 숙원사업을 해치우는 ‘재난 자본주의’(나오미 클라인)의 요구를 위해 작동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이번 일을 겪으며 없어선 안 될 직업들, 지금보다 더 많은 자원의 투여가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의료, 돌봄, 배달, 농업(식량생산) 종사자들이 인간다운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상상력의 핵심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산하고, 일하고 있다. 남녀 누구나 생계를 위해서든, 가사·돌봄을 위해서든 일정 시간 일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산’ 노동의 범위를 가사·돌봄까지 확장한 뒤 노동의 총량을 줄여야 이 사회를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일도 쉬워지고, 우리 삶의 형태가 탈성장의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정의 역할을 얘기할 때마다 경제관료들은 균형재정의 신화에 매달려 국가채무 비율을 얘기한다. 이들이 교의(敎義)처럼 되풀이하는 말이다. “적자 국채 발행은 현세대가 후손에 빚을 떠넘기는 일이다.”

그들이 미래세대를 정말로 걱정해서 하는 말일까 의심이 든다. 이들은 기후위기가 미래세대에 떠넘길 부담에는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묻고 싶다. 지금 우리가 미래세대에 넘기지 말아야 할 진짜 ‘빚’은 무엇인가.

<손제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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