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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여기에서 더 살아주세요. 이사가지 마세요.’ 이렇게 좀 여기 대문에 써붙이고 싶어요.”

요즘 엉뚱하게도 핫플레이스가 됐다는 서울 강북구 삼양동.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과 동고동락’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달살이에 나선 삼양동의 옥탑방 골목은 다른 지역에서까지 구경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 시장이 한달살이를 끝내는 19일을 나흘 앞둔 지난 15일 밤, 그곳에 가봤다. 서울에서 수십년을 살았지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서울시장이 폭염을 지낸 옥탑방 모습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삼양동은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다며, 가끔씩 전해 들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날도 날씨가 푹푹 쪘다. 솔샘로(도로명) 큰 찻길과 닿은 골목길은 가파르고 어두웠다. 서울에 아직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오르막과 계단이 번갈아 있었다. 마치 도시 속 섬처럼 낯설었다. 2ℓ짜리 생수 몇병과 식료품을 간이수레에 싣고 힘겹게 오르는 주민도 눈에 들어왔다. 큰길에만 해도 대형마트와 학원건물 등이 줄지어 있어 여느 서울 동네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아파트 대단지에서는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옥탑방 골목에는 광복절 휴일인데도 인근 동네에서 왔다는 4~5명이 소곤대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옥탑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들을 안내한 이 동네 주민 이모씨(68)의 목소리에는 조금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일부에선 ‘서울시장이 쇼한다’는 비난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 주민은 “거지같이 사니까 오는 사람도 없는데, 시장님이 와서 얼마나 좋은 줄 아느냐. 뭣 때문에 쇼를 하겠느냐. 이사가지 말고 더 사셨으면 좋겠다.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기자라고 밝히자 이참에 대통령께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랏일 보시느라 어려움이 많으실 텐데 감사드린다. 힘드시더라도 자식한테 손도 못 벌리는 늙은이들, 골병 든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없이 살게 해달라. 젊은 사람들도 빚 없이 살 수 있게 해달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하소연할 데도 없으니까….” 그는 결혼한 아들과 딸을 뒀지만 전세자금 마련 등의 이유로 모두 빚을 지고 살아 “서로 형편도 묻지 못한다”면서 이번 폭염에 선풍기도 (전기료가) 무서워 못 켰다고 했다. 다른 동네에서 왔다는 또 다른 이는 “시장님이 우리 동네에도 좀 와주셨으면 좋겠다. 금싸라기 같은 사람들(공직자·정치인들)이 이런 곳에 자주 오기나 하느냐”고 했다.

밤 9시가 가까워진 시간. 옥탑방 불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휴일이라고 옥탑방살이도 휴일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더위에 지쳐 보이는 비서관이 대문 밖으로 나왔다. 외부 일정 중인 시장이 좀 있으면 돌아오실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여름 이처럼 폭염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한달살이 시작하셨을까요?’ 물으니, “아니요(웃음)”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비서관은 지난 1일 111년 만의 폭염으로 강북구 기온이 최고 41.8도까지 치솟은 날 하필 당번으로 시장 옆방에서 잠을 잤다. 지친 표정 속에서도 이제 ‘한달살이’가 며칠 남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읽혔다.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주인장의 얘기도 들었다. “시장이 다녀갔다고 뭐가 달라질지 한번 봐야죠. 그 윗동네엔 도시가스도 안 들어가 기름보일러를 때요. 가스 놔준다고 하대요. 시장이 왔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꾸 언론에 나는 바람에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집값 떨어진다고 옥탑방 앞에서 데모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봐야죠, 뭐….”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겹친 시장의 옥탑방살이는 자주 사람들의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다양한 시각이 나왔다. 며칠 전 만난 20대 젊은이는 시니컬하게 평하기도 했다. “시장에겐 한달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같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고 자만해선 안된다. 당장의 어려운 생활도 문제지만 그들이 진짜 힘든 이유는 그런 생활에서 앞으로도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19일 서울시장은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무리하며 강북 우선투자를 골자로 한 ‘지역균형발전 정책구상’을 밝혔다. 옥탑방 골목을 다녀오며 머릿속에 내내 맴돈 한마디는 “위로가 된다”는 말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만큼 삶이 힘들다는 말일 것이다. 새벽녘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분다고 해도 한여름밤 폭염 아래 대통령과 시장, ‘금싸라기’라고 표현한 사람들을 향한 그들의 말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가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은 여전히 힘겨울 테니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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