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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4일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69일이 됐다. 윤석열 정부의 총임기인 1826일 중 9.2%가 지났다. 

1년 전 이맘때, 내년 10월에는 누가 대통령이 돼 있을까 궁금했다. 윤석열이 되든, 이재명이 되든 5년간 익숙했던 이름을 바꾸기에는 낯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겨우 다섯 달 남짓 했을 뿐인데, 전임인 문재인 정부는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폐기된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과 물러난 장차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섯 달 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경제적 분위기는 전 정부의 자취를 빠르게 지우고 있다.

3000을 넘어섰던 코스피는 어느새 2200까지 물러섰다. 증권계좌의 빨갛던 주식평가 금액이 파랗게 변한 지 오래다. 삼성전자, 카카오, 네이버 등 ‘국민주’들은 국민들의 부를 갉아먹고 있다. 

‘가즈아’를 외쳤던 2030들은 더 이상 가상통화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기승을 부리던 갭투자에 대한 우려는 어느새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로 바뀌었다. 6%에 육박하는 마이너스대출통장 금리는 낯설다 못해 공포스럽다. 삼계탕 한 그릇이 2만원에 육박하고 김밥 한 줄이 5000원 가까이 하는 것도 ‘이게 실화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무역수지는 몇개월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1200원만 돼도 부담스럽던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바라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2위를 달리던 경제성장률은 어느새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급변한 남북관계는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남한은 대규모 군사훈련을 재개했고, 북한은 수차례 미사일을 쏘며 응답하고 있다. 이제는 북한이 언제 핵실험을 재개해도 낯설지 않은 상황이 됐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회담하던 풍경이 몇백년은 된 듯 비현실적 장면처럼 느껴진다. 가뜩이나 허약해진 증시와 환율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 재개가 금융에 미칠 파장은 예단하기 어렵지 않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치적, 경제적 글로벌 환경이 급변했다. 그런 만큼 각종 경제지표가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든다. 과연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어떤 이의 눈에는 대한민국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테고, 어떤 이의 눈에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테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이 훨씬 많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20%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35%에도 훨씬 못 미치는 지지율이다.

문제는 이런 낮은 지지율이 계속되면 정부가 정책적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간밤에 무고하셨습니까?” 요즘 금융권 채권담당자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의 첫인사다. 금융권의 단기자금이 마르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기분으로 산다는 금융권 인사들이 많다. 단기자금시장 위축은 강원도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지급보증 거부가 트리거가 됐지만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도 컸다고 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가 “법조전문가인 현 정부는 사정은 잘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경제지표를 보면 금융을 잘 다룰지는 의문”이라며 “혹시 금융시장이 잘못되면 자칫 그 책임을 다 덮어쓸 수도 있어 문제가 될 채권은 아예 손을 안 댔고, 그러면서 자금시장이 급랭했다”고 한 것이 최근 금융권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윤석열 정부 169일째. 갈수록 글로벌 환경은 험해지고 있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는 강해지고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도 급변하고 있다. 끝없이 떨어지는 일본 엔화와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국 경제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한다. 단 한번의 정책 실패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전 총리처럼 여론은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주말 많은 사람이 광화문에 모여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청에서 광화문 사이에 섰고, 어떤 사람들은 서울역에서 시청 사이에 섰다. 윤 대통령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윤 대통령의 잔여임기는 1657일이다. 전체 임기의 90.8%가 남아 있다.

<박병률 경제부장 mypark@kyunghyang.com>

 

연재 | 아침을 열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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