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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거짓말에 능한 직업군이기는 하지만 경기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경기침체에 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발생한다면 매우 경미할 것”이라고 답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복합위기인 것은 맞다”면서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지나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경제학자와 금융 전문가, 국제기구, 언론 등은 한결같이 경기침체를 가리킨다. 실제 일부 국가는 침체에 빠져 외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서는 한 국가의 위기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경제난에 빠진 국가에 지원한 구제금융은 8월 말 기준 1400억달러로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IMF·세계은행(WB) 합동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나라의 숫자를 보면 당장 어려운 나라를 알 수 있는데 많이 늘었다”며 “아시아에서는 요청한 나라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 많이 준비한다고 한다”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 규모 5위 영국도 최근 구제금융설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침체가 다가오는 것만은 명백해 보인다. 북미의 BMO 금융그룹이 미국 성인 34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가 경기침체가 임박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현지시간) 새로운 경기침체 모델 예측에서 앞으로 1년 안에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이 기존 65%에서 100%로 높아졌다고 전했다. 미국은 1분기 -1.6%에 이어 2분기 -0.6% 등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다만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침체는 성장과 수출, 고용 같은 거시지표뿐 아니라 시민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한국 가계는 자산의 60%가량이 집인데, 집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 실거래가 지수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올해 들어 8월까지 6.6% 하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는 집값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진단한다. 최고점 대비 절반가량 폭락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KB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자료를 취합해 정리한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Price Income Ratio)으로 거품이 어느 정도인지 추산할 수 있다. 올해 2분기 서울지역 대출자의 연소득 중위값은 5910만원, 담보대출 아파트의 중위값은 8억7500만원으로 PIR이 14.8배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14.8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소득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의 담보대출 PIR은 2010년부터 5년간 8배 안팎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소득과 집값 상승률이 비슷하게 움직인 것이다. 2016년 이후 집값이 소득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했다. PIR 8배 수준으로 되돌아가려면 45%가량 거품이 빠져야 한다.

제2금융권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설이 파다하다. 특히 캐피털사는 올해 상반기 연체율이 0.9%까지 치솟아 연체잔액이 2290억원으로 불어났다. 불과 6개월 새 연체율이 0.4%포인트 급등해 연체액이 1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증권사와 보험사도 각각 연체잔액이 2000억원, 1000억원에 이른다. 부동산 PF는 건설사가 대출을 받아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분양해 수익을 낸다. 부동산시장 냉각으로 미분양이 급증하면 금융사까지 흔들릴 수 있다.

다가오는 경기침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깊고 길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경제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자본·금융 시장을 대폭 개방한 한국 경제는 그 피해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대량실업으로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거나,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해 길거리로 나앉는 사람이 속출할 수도 있다. 

경기침체에 대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한다. BMO 금융그룹 설문조사에서 76%는 침체에 대비해 이미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답했다. 차나 집 같은 고가품의 구매를 미루는 게 가장 많았다. 빚 갚기, 휴가 비용 축소, 저축 늘리기, 현재 직업 유지하기 등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 탓에 가뜩이나 형편이 어려워진 비정규직과 영세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은 더 큰 시련에 직면하게 됐다. 정부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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