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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송민순 회고록의 비밀 내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작년 11월22일에 외교부 장관에게서 직접 받은 공문이다. 그러니까 송 전 장관은 작년 10월 회고록에 남북 접촉 등 안보 관련 비밀을 담아 출판하면서도 소속됐던 기관장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책에서 국가정보원이 북한으로부터 받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북한 전화통지문의 내용을 4줄에 걸쳐 공개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대통령 선거가 20일도 남지 않은 때, 자신의 책이 진실임을 증명하겠다며, 북한 전화통지문 청와대 문서를 공개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참여정부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 과정을 담을 자신의 회고록 내용과 관련, 당시 정부가 사전 확인한 북한의 입장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건을 21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나는 기억한다. 그가 장관으로 있던 외교부는 2007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고 문서를 공개한 정창수 당시 국회 보좌관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의 외교부는 FTA 보고 문서를 ‘비밀’로 지정하지도 않았었다. 게다가 문서의 내용도 매우 초보적이었다.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미국의 ‘반덤핑’이라는 무역 장벽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되, 미국이 끝내 거부하면 다른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삼척동자도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애초 정부가 제시한 FTA의 기본 목적을 허망하게도 포기한 것이었다. 정 보좌관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공익을 위해 언론에 제보했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정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결국 정 보좌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외교부의 수사의뢰가 없었다면 검찰은 정 보좌관을 기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송 전 장관은 북한이 보낸 전화통지 청와대 문서를 통째로 공개했다. 자신의 자서전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전화통지문 문서가 ‘비밀’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항변한다. 그는 자신이 수사의뢰한 정 보좌관을 잊었을까? 남북 사이에 오간 전화통지문 등은 보호가치가 있는 비밀이다.

나는 묻는다. 그는 어떻게 국정원장이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문서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을까? 그 문서는 사유할 수 없는 공공기록물이다. 송민순 사건은 외교·통상·안보 분야 비밀의 사유화이다. 소수 관료들이 시민이 알아야 할 외교·통상·안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 안보 비밀을 사유화한다. 파당적으로 이용한다.

외교부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위안부 공동 발표를 저질러 놓고도 가장 기초적인 강제연행 인정 여부 협의 문서도 한사코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산 수산물 방사능 검역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사드 배치를 위해 미국과 이미 진행을 마친 환경영향평가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한·미 FTA 협상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국익을 위한 비밀’이라는 나팔을 분다.

그러나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 파당화한다. 사익과 당파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 안보 비밀을 이용한다. 2012년 대선의 북방한계선(NLL) 사건에서도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이란 걸 들고나왔다. 정상회담 회의록이라며 대선 유세에서 읽었다.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해서 반북 공세를 강화한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둘로 갈랐듯이 시민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의 분출을 이념 대결로 편을 가른다.

안보 비밀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두 방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공익을 위한 공개 원칙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보호가치 있는 비밀에 대해선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첫째, 정보공개법을 고쳐 시민의 생명, 안전, 평화와 관련이 있는 정보는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공개 거부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안보 정보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안보가 산다. 이 점에서 송민순 사건에 대한 바른 처리가 중요하다. 관련 기관은 대선 날짜 달력만 쳐다보지 말고, 송 전 장관이 어떤 법적 권한에서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 문서를 취득했는지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것이 안보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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